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세계 최대 규모의 마애 석불을 포함한 모든 불상의 파괴를 지시함에 따라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인 아프가니스탄의 간다라미술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가운데 이의 보존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아 그 교리를 교조적으로 받들고 있는 탈레반 정권은 국립박물관 소장 불상까지 파괴토록 하고 불교를 믿지도 못하게 하는 등 이슬람에 반(反)하는 것은 무엇이 됐건 금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파리에 본부를 둔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는 2월 27일 "고대 실크로드의 요지에 있는 아프간은 역사를 통해 페르시아, 그리스, 힌두교, 불교 및 이슬람교의 영향이 뒤섞인 독특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고 지적, 이의 보존을 촉구했다.
또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도 아프간의 문화유산 보존은 그것이 이슬람적인 것이든 비(非)이슬람적인 것이든 간에 "모든 사람들이 더 낫고, 더 평화적이고, 더 관대한 미래를 향유할 수 있는 강력한 토대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난 총장은 이어 "어떠한 문화유산, 어떠한 기념물, 어떠한 신앙적 조상(彫像)을 파괴하는 것은 대립의 분위기를 연장할 뿐"이라면서 탈레반 정권은 불상을 보호하겠다는 앞서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도 이날 필립 리커 국무부 대변인을 통해 "미국은 탈레반 정권의 불상 파괴 포고령 발표를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실망하고 있다. 그들의 조치는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이라는 이슬람의 기본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불교 국가인 스리랑카는 탈레반 정권의 조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으며, 인도는 문제의 포고령이 "아프간의 전통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에 대한 폭력"이라고 비난했다.
이탈리아의 자금 지원을 받는 아프간 문화유산 보존학회의 대표인 안젤로 가브리엘레 데 세글리에 파키스탄 주재 이탈리아 대사는 불상의 파괴는 "아프간 국민과 세계의 크나큰 손실이자 비극"이라면서 포고령 시행의 유보를 촉구했다.
축출된 부르하누딘 라바니 정부에서 외무차관을 지낸 하미드 카르자이는 아프간에서 불상은 더 이상 종교의 일부가 되지 않지만 이집트의 고대 파라오와 같은 문화유산이자 역사"라면서 "그렇지 않다면 왜 불교의 반이슬람 문제가 1천200년 전에 제기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압둘 살람 자이프 파키스탄 주재 아프간 대사는 "우리는 왜 불상들이 과거에 파괴되지 않았느냐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아프간에 국교를 가진 정부가 있고, 이슬람에 반하는 모든 것이 금지되기를 바란다"고 강경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바미얀에 있는 높이 53m와 37m의 거대 마애불상과 함께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수백 점의 소형 불상들도 불상 파괴 포고령에 따라 파괴될 것이나 힌두와 시크교의 교도들이 종교의식을 하는 것은 금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2001.2.28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