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인기 드라마 '태조 왕건'으로 불교사상에 새삼 무게가 실리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월 2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미륵사상 학술대회'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미륵불을 자처한 궁예가 내세운 미륵사상은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사회변혁의 열망이었다. 그의 초심에서 본다면, 미륵불은 신라말기 고통받는 민중을 구원해 '용화세계(龍華世界)'라는 이상세계로 나아가려고 했던 변혁 의지의 구현자이었다.
그러면 후삼국 통일 후 고려 태조 왕건이 내세운 미륵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던 것일까.
왕건이 옛 백제 지역에 창건한 개태사(開泰寺)는 미륵신앙적 요소가 강한 사찰인데, 왕건은 이를 통해 민심 수습과 사회 통합을 이루고자 했다. 왕건의 미륵불은 '조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학술대회에서 신광철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는 미륵사상의 변혁 동기에 집중된 그동안의 연구와는 달리 미륵사상의 조화정신을 조명해 주목을 끌었다.
석가모니의 제자였던 '미륵'은 성불하지 못하고 입멸했다. 모든 중생이 십선(十善)의 마음을 가질 때야 성불하리라는 서원을 세웠기 때문.
미륵은 그러나 중생에게 다시 오리라 믿어졌다. 59억 7,000만년이 지난 후 세상에 내려와 성불하고,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세 번의 설법으로 중생을 구제해 용화세계(龍華世界)를 구현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천년왕국사상과 닮은 이런 미륵사상은 동양의 대표적 유토피아 사상이었고, 특히 한국에서는 많은 전란을 거치면서 보다 변혁적이고 실천적인 민중종교운동의 양상을 띠며 계승되었다.
신 교수는 그러나 "미륵사상이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혁신한다는 점에서 변혁의 동기와 맞닿아 있지만, 그러한 세상이 미륵불의 자비심에 의해 이루어지고, 새롭게 혁신된 세상이 차별 없이 하나되는 세상이라는 점에서 조화의 동기와도 맞물려 있다"고 강조했다.
미륵이 한자문화권에서 자씨(慈氏) 또는 자존(慈尊)으로 번역된다면서, 미륵의 본질인 자심(慈心)은 대립을 해소하고 조화의 세계를 건설하는 이념적 동력이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고려왕조의 민족통합 과정에서 나타난 미륵사상을 통해 그 조화의 정신을 고찰하고 있다.
태조 왕건에 이어 광종도 옛 백제 땅인 논산에 관촉사(灌燭寺)를 창건하고 미륵대불을 조성하면서 불법을 통한 사회통합을 추구했다.
신 교수는 "절대적인 자비주의와 평화주의에 근거한 미륵사상의 조화정신이 사회적 혼란기의 한국사회에서 새롭게 익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1.2.28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