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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삶의 자취를 찾아 '장욱진 회고전'
'심플한 그림을 찾아 나선 구도의 긴 여로.' 충남 연기에 있는 서양화가 장욱진(917∼1990)의 묘비는 일흔세 해를 살았던 그의 일생을 이렇게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다.

그는 평소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나는 심플하다'란 말을 하곤 했다. '심플하다'란 말은 그의 표현을 빌리면 '내가 내 일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다.

'심플'이란 말처럼 그는 그림과 술로 압축되는 심플한 삶을 살다갔다. 오죽 했으면 "그림은 나의 일이고 술은 나의 휴식이다. 내 몸과 마음은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데 다 써버릴 작정이다. 남은 시간은 술을 마시고"라고 말했을까. 평생 그림과 술밖에 몰랐던 그를 가리켜 김병종(서울대) 교수는 '화도의 선사' '화도의 탁발승'이라 부르기도 했다.

박수근, 이중섭 등과 함께 한국 현대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장욱진의 10주기 회고전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다. 2월 15일까지 열리는 이번 회고전의 주제는 '해와 달·나무와 장욱진.' 49년 작 '독'에서 타계 직전에 그린 '밤과 노인'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고른 대표작 70여 점이 선보인다. 95년 호암미술관에서 열렸던 5주기 기념전 이후 최대 규모다. 전시작 가운데 '소'를 비롯해 '아이와 나무' '까치와 호랑이' 등 23점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

장욱진은 그림과 술 외에는 모든 것을 버린 화가다. 지난 60년 그림만 그리려고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둔 그는 서울을 벗어나 지방으로 내려갔다. 덕소에서 13년간 홀로 화업에만 몰두했고 수안보, 신갈 등지를 떠돌았다. 자연히 아내인 이순경(80) 씨가 2남4녀의 생계를 떠맡아야 했다.

70년 작 '진진묘'는 이런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찬사의 표현이다. 보살상처럼 보이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그는 꼬박 일주일 동안 밥도 술도 끊고 매달렸고, 그림을 완성하고는 탈진해 석 달 동안 앓아 누웠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가 버린 것은 서울대 교수 신분만은 아니다. 그가 칩거했던 수안보나 덕소의 화실은 마치 선승들의 방처럼 그림 그리는데 필요한 화구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무소유의 삶을 터득하고 실천한 셈이다.

불교가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는 평생 불교와 가까웠다. 70년대 후반∼80년대 초 집중적으로 그렸던 먹그림은 책방 일을 놓은 아내에게 사경을 권하면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그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는 아내와 함께 수시로 절을 찾았고 76년 '팔상도'와 '사찰'을 그렸다. 77년 여름 통도사에서 경봉 스님에게 비공(非空)이라는 법명을 받았고, 그 해 법당 건립 불사를 위한 비공개 도화전을 현대화랑에서 열기도 했다.

한편, 10주기 기념전에 맞춰 그의 유화 작품 720여 점을 담은 전작 도록 <장욱진 카탈로그 레조네>(학고재)가 출간됐다. 전집과 작품 분석집 성격을 모두 합쳐 기존 도록이나 화집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전작 도록은 국내 작가로는 운보 김기창 화백에 이어 두 번째다. (02)734-6111

권형진 기자
200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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