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주된 재료인 지필묵(紙筆墨). 옛부터 문인들은 때론 두텁고 때론 얇게 하면서 여백의 미를 살리기도 하고 일필휘지의 기운 내기도 했다.
종이문화가 발달한 동양3국(한국 중국 일본) 중에서도 우리나라 종이는 품질이 좋아 한때 귀중품으로 여겼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종이 대신 캔버스가 화폭을 대신한 서양에서는 종이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의외로 유명작가 가운데는 종이에 흠뻑 빠진 사람들이 적지않다.
조각 등 종이로 만든 작품의 경우 우리나라에선 보통 회화보다 아랫단계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비해 서양에서는 오히려 독립적인 작품으로인정하고 있다. 또한 말년에 이르러 종이작업에 전념하는 작가들도 많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여숙화랑이 28일까지 여는 종이로 읽는 거장들의 세계'(Masters on Paper)전에선 서양의 다양한 종이작품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맨 먼저 관심을 끄는 작가는 멕시코 출신 인디언인 루피노 타마요. 91년에 사망한 그는 자신의 뿌리와 민족의 근원에 대한 상징적인 물음들을 독창적인 화법으로 풀어내 현대 라틴 미술의 거장으로 꼽힌다. 전시에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종이로 만든 작품이 선보인다.
잭슨 폴록과 함께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헬렌 프랑켄탈러는 색채와 빛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추구한 작가다. 그도 말년에 이르러서는 종이작품의 순수하고 독특한 맛에 반했다고 한다.
개관 17주년 기념전으로 꾸민 이번 전시에는 또 영화 퐁네프의 연인'배경인 퐁네프 다리를 천으로 덮어싸는 대지예술'로 유명한 크리스토는 콜라주와 드로잉을 선보인다.
이밖에 얼마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연 루이즈 부르즈아, 독일을 대표하는 조각가로 불교의 선사상에 심취한 귄터 웨커 등의 작품도 나온다. (02)549-'7574
2000.12.24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