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2000, 새로운 예술의 해'. 불교 문화계 역시 '새로움'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을 만큼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시도를 펼쳐 보인 한 해였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사찰 문화행사가 양적·질적 면에서 다양한 볼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하는 자리로 정착되어 간다는 점이다. 이들 문화행사는 음악회, 전시회 등 초창기의 실험 단계에서 벗어나 다도시연, 시낭송회, 체험행사 등 보다 다채로운 방식으로 지역민들과 만나고 있다. 대형 사찰이나 도심 포교당뿐 아니라 작은 사찰에서도 이런 문화행사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동안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연극계에선 대형 창작작품들이 잇달아 무대에 올라 모처럼 불자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4월 선보인 대구불교문화예술원의 창작 뮤지컬 '오! 부처님'을 비롯해 '도솔가-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창작 오페라 '무명탑', '직지', 음악극 '진감' 등이 올 한해 무대에 오른 대표적 작품들. 형식면에서도 현대극, 불교창작음악과 연극을 혼합한 음악극, 음악과 무용, 그리고 연극을 혼합한 총체극 등 다양한 시도는 한국 연극계에 기여할 만한 성과를 낳았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문화활동은 활발했다. 미술, 음악, 사진, 무용 등 분야별 관련 사이트가 하나둘 문을 열면서 인터넷에서도 불교문화를 접할 기회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진작가 김연숙 씨와 변명환 교수의 사진전은 인터넷에서도 함께 열려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았다.
전통을 현대적 코드로 재해석하는 작업은 분야가 따로 없었다. '직지체험축제' '청주 고인쇄출판박람회' '원주 한지문화재 2000' 등은 전통문화를 현대에 맞게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불교보컬그룹 '도리도리'의 탄생은 불교와는 낯설게 느껴졌던 대중음악계에 부다팝스라는 새로운 불교 대중 음악 장르를 선보였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각 종단과 사찰에서 선보인 불교 캐릭터 상품도 정적으로 보이기 쉬운 불교문화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한국불교음악협회와 (사)불교음악협회의 창립은 새 천년 벽두부터 한국불교음악계를 달구었다. 불교음악계의 활성화를 기치로 출발한 두 단체는, 기대만큼의 활동을 보여주지는 못해 뜻 있는 불자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척박한 불교음악계에서 모임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서로를 고무시켜 조화를 이루며 운영해 나가는 데 있다는 상식의 충심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이밖에 우리 전통설화인 바리데기 설화의 애니메이션 제작과 'CUP', '쿤둔' 등 티베트 불교를 소재로 한 영화 두 편의 국내 개봉도 관심을 끌었다. 월드컵 축구 경기를 둘러싸고 티베트 불교 사원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CUP'과 달라이 라마의 전기 영화 '쿤둔'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 영상 포교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한국 관객과의 정서적 차이나 마케팅 소홀로 많은 관객과 만나지는 못해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전시·공연 부문에서의 활발함에 비해 여전히 사진·문학·영화 등은 이렇다 할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공연 부문에서의 성과들도 순수하게 불교계 역량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오! 부처님' 외엔 찾기 힘들어 교계 여건 성숙과 내적 역량의 강화를 영원한 과제로 남겼다. 기존의 소재주의적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불교의 세계관과 가치를 녹여낼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의 출현도 아쉬운 대목이다.
형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