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한 해 동안 국내 불교학계는 다양한 변화를 경험했다. 연구 단체는 늘고, 소장학자의 참여가 두드러져, 예년과 달리 토론과 논쟁이 활발해졌다. 또한 국내 불교학 발전의 초석이 될 기초 연구 자료 역시 증가했다. 그럼에도 연구 분야가 다른 타 학계나 주변국 불교학계와 교류는 부족하고 '종조 논쟁 무용론'나 '간화선의 현대적 수용' 등과 같이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구태를 벗지는 못한 한 해였다. <편집자>
■ 학술단체 창립 '붐'
올해는 불교 관련 학술단체들이 잇따라 창립되면서 불교학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 한 해였다. 3월 한국선학회와 회당학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5월말에는 불교계가 주도하는 장례문화학회가 창립됐다. 또 불교심리학준비모임, 선어록연구회 등은 올 한 해 동안의 정기 모임을 토대로 2001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새로 창립하는 이들 학회를 비롯해 현재 교계 학술단체는 약 30여 개. 정기적으로 학술지를 간행하는 학회도 20여 곳 이상 된다. 이 중 대각사상연구원, 한국불교선학연구원, 밀교문화연구원, 정토학회, 전자불전연구소, 불교학연구회 등 현재 교계 학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학술단체들 대부분이 최근 2년 이내에 창립됐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이와 함께 한국선, 밀교, 정토, 진각사상 등 각 학회의 지향점에 따라 연구 방향과 참여 인물이 다양한 것도 최근 학회들의 두드러진 점 가운데 하나다. 특히 보조사상연구원과 성철선사상연구원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학회가 봄·가을 정기학술발표회에 집중했던 것과는 달리 불교학연구회, 한국선학회를 비롯해 불교심리학준비모임도 매달 발표회를 열고 있다.
■불교학 기초 자료 집대성
국내 불교학 발전에 전기를 마련할 '기초자료'들도 집대성되기 시작했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은 <한국고승비문총서>를 발간했고, 성보문화재연구원도 10년 간의 작업 끝에 <한국의 불화> 1차 완간본 발간했다. 임기중(동국대) 교수는 <불교가사 원전연구>를 출간했고, 대한불교진흥원은 3년 간의 작업 끝에 <한국사찰의 편액과 주련>을 펴냈고, 국제원효학회는 <원효전서>영역본 발간을 앞두고 있다. 또한 인터넷이나 CD로 열람할 수 있는 전산본 <한국불교전서>(전자불전연구소), <고려대장경>(고려대장경연구소) 등도 나왔다. 이러한 기초자료들은 한국불교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동안 기초자료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불교계가 학문적인 성과를 축적하고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내불교계의 기초자료 집대성 노력들은 대부분 개인이나 단체의 원력에 의지하고 있어, 이제부터라도 종단차원에서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데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여론이다.
■불교학회·학자 홈페이지 증가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불교학계에서도 이를 활용하는 빈도수가 증가했다. 현재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교계 학술단체는 대략 10여 곳. 한국선학회, 불교학연구회, 한국불교학회, 한국불교연구원, 고려대장경연구소, 동국대 전자불전연구소, 인도철학회, 동국대 불교사회문화연구원, 원효학연구원, 성철선사상연구원, 선어록연구회 등이 대표적인 사이트이다. 이들 사이트는 자신들의 연구성과를 게시판이나 자료실을 통해 공개하고 있으며, 세미나 일정과 내용을 미리 밝히고 있다. 불교학자들의 홈페이지 운영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여기에는 윤원철(서울대 철학과), 이태승(위덕대 불교학과), 김호성(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 등이 있다. 이밖에도 불교관련 학문을 전공하는 대학원생과 대학강사들도 인터넷으로 연구성과를 공개하고 있다. 최원섭(성철선사상연구원 간사) 씨는 "이제까지 불교학술이 일부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던 연구성과를 대중과 공유하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1발표 2논평 체제
쟁점과 토론 없는 불교학계 세미나나 발표회에 '1발표 2논평' 체제 역시 정착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교계 학술대회의 모습은 '성의 없는 발표', '형식적인 토론' 등이 주류였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신진·소장학자들이 세미나에 대거 진출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당당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년 같으면 선택에 불과했던 논평이 필수과정으로 정착돼, 날카로운 질문으로 발표자를 괴롭혔다. 물론 이렇게 변모하고 있는 학술회의 모습에 대해 "다양한 주제를 발표하지만 내용이 깊지 못하다"는 지적에서부터 "본인도 자신이 없거나, 확실치 않은 것을 막 쏟아놓을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까지, 새겨 들을만한 비판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불교학술 세미나나 월례발표회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연구의 저변이 두터워지고, 문제 의식이 충만한 소장학자들의 잇따른 배출이 '새 바람'의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반성과 과제
국내 불교학계의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특정 인물이나 시대 연구에 치우친 지금의 불교학계 연구 풍토에서 벗어나 철학이나 사회복지와 같은 타 분야와 교류하며 우리의 구체적 현실을 화두로 삼아 불교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내어야 한다는 주장이 적잖다. 또한 '종조'나 '간화선' 등 한국불교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생산적인 논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반응은, 한국불교의 주류인 조계종의 정체성, 나아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밝히기 위해서도 사상적, 역사적 양면에서 불교를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한국의 불교학은 전통을 '해체'하는 과정에 이르렀으며, 해체란 아름다운 민족문화를 갈아엎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했던 문화를 오늘에 되살려 내는 적극적인 행동방식"이라는 심재룡(서울대) 교수의 말은, 이 같은 상황을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이 세미나에서 심 교수는 △연구 방법론의 지평을 더 넓혀 사학자와 철학자들이 각자의 학문을 서로 주고받아야 하고, △거시적인 한국불교사 고찰을 위해 중국불교 및 일본불교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의 병행해야 하며, △불교적 개념의 의미와 그것들이 한국 불교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고, △신행과 수행의 영역에까지 학문적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등 국내 불교학의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즉 방법론으로는 학제간 연구가 활성화되고, 내용에서는 한국의 선불교 연구와 주변국의 불교학 연구를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현대인의 다변화된 삶을 불교적 시각을 통하여 해석해 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종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