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조성된 3층 석탑 하나가 6월 20일 폭우가 쏟아지던 새벽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장계리 마을 정자 자리에 세워져 있던 높이 1미터가 조금 넘는 아담한 탑. 이 탑은 고려시대 것으로 장계리 남산 기슭에 있던 것을 30여 년 전에 마을 한 가운데 정자자리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이 일대는 옛날의 절터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논이다. 홍 아무개씨의 집 뒷담과는 불과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던 탑이 비 내리는 새벽에 사라진 사실을 알고 마을 주민들이 혀를 찼지만 이미 탑은 잃어버린 뒤였다.
홍 아무개씨는 “새벽 2시에 차 소리가 나서 잠을 깼지만 비가 내려 차가 도랑에 빠진 줄 알았다”며 탑의 도난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죽산면은 고려시대의 불교 유적이 산재한 문화재 마을이다. 1키로 인근에는 미륵당의 태평미륵과 봉업사지, 가솔리 쌍미륵과 궁예미륵 등의 문화재가 즐비한 곳. 이런 곳이 문화재 털이범에게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기만 하다.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일제조사와 강력한 보존 대책은 이미 수 년 전부터 조계종과 불교계가 주장해 온 사안이다. 국회에서도 지난 2월 28일 비지정 문화재 털이범에 대한 처벌 조항을 강화(징역 2년 이상)하는 법안을 의결한 바 있다. 그러나 전국의 많은 비지정 문화재들은 여전히 털이범들이 눈독을 들이는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지정 불교문화재 보존대책으로 교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문화재보호법 개정도 추진되고 있다. 개정내용의 핵심은 불법취득 문화재의 유통방지를 위해 도난문화재의 은닉행위를 별도로 처벌하고 공소시효 특례조항을 신설하는 것.
문화재청은 6월 19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제222회 임시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통해 ‘도난 시점’부터 적용하는 현행 문화재보호법의 공소시효(3년에서 7년) 조항을 ‘발견 시점’부터 적용하는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현행 문화재보호법으로는 문화재를 절취하여 은닉하여 두었다가 공소시효 기간이 지난 후 문화재를 판매하는 경우 범인을 처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회수조차 어려운 법적 허점을 보완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에 따른 것이다.
안성의 죽산면은 일대의 거의 대부분이 절터라 할 만치 불교문화재가 산재된 곳이다. 때문에 밭만 갈아도 기와조각이 나오고 땅을 파면 석재들이 수두룩하게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비지정문화재가 당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가 있는 사례는 허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에도 강 아무개씨의 목장에는 인근에서 옮겨 온 5층석탑이 장식용으로 모셔져 있다.
문화재 절도 사건은 주로 비 오는 철에 이루어진다. 비가 내리면 인적이 뜸하고 빗물이 발자국이나 차 바퀴자국 등 흔적을 씻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찰 당국도 장마철을 문화재 절도 방지 강조기간으로 삼는다.
다시 장마철이 돌아오고 있다. 문화재 털이범들이 오래 동안 눈독을 들여 온 문화재들의 주변을 열심히 조사(?)하는 그런 철이 된 것이다.
임연태 뉴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