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두문불출하며 전라남도의 한 암자에서 집필에만 전념해 온 소설가 남지심 씨가 4권 분량의 장편소설 <담무갈>을 펴냈다.
소설<우담바라> 출간 이후 13년 만에 발표한 신작 소설 <담무갈>은 자본이 권력이자 신앙이 된 시대에서 우직하게 혹은 현명하게 종교적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의 일대기를 액자소설 형식으로 끼워 넣었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태어나고 죽는다는 삶의 근본적인 문제제기로부터 날로 황폐해지는 공동체적 삶의 울타리 속에서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의 현실적 의미까지를 진지하고 폭넓은 시선으로 성찰하고 있다.
- 제목 담무갈이 의미하는 것은?
나는 종교와 종교인이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담무갈은 <화엄경>에서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상주하며 법을 일으킨다고 전하는 법기보살인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스님, 목사, 신부, 원불교 교무 등은 모두 이름만 다를 뿐 우리 삶 속에서 항상하는 법기보살의 현신이나 마찬가지다. 이 시대의 법기보살을 찾아보고, 이같은 법기보살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담무갈이라 제목을 붙였다.
- 원불교를 소재로 했는데?
<담무갈>에서는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대종사님의 생애와 원불교의 핵심사상이라 할 수 있는 삼동 윤리를 형상화시켜 보았다. 삼동윤리는 모든 종교의 회통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삼동윤리를 형상화하기 위해선 불교 쪽 스님을 끌어들일 필요를 느꼈고, 그러다 보니 생소한 스님을 또 만들어 내는 것 보다는 독자들 기억 속에 살아있을 백족화상을 끌어들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우담바라>의 백족화상을 <담무갈> 속에 끌어들였다. 그랬더니 <우담바라>속에 있던 인물들이 저마다 손을 흔들며 <담무갈> 속으로 들어왔다. 마치 10년간 잊고 있던 자신들의 존재를 나에게 일깨워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담무갈>을 처음 시작할때만 해도 전작인 <우담바라>와 연계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원래는10년 전 한 원불교신도의 부탁으로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의 생애를 다룬 소설을 쓰려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우담바라>의 후편이 되어버렸다.
- <담무갈>과 <우담바라>의 차이점은?
<우담바라>는 개인적인 구도과정, 즉 개인의 완성 쪽에 밀착했었다. 그때는 40대였으니까 개인의 삶에 더 치열히 고민했던 것 같다. 50대 후반 이제 60을 바라보는 나이라서 그런지 이번 <담무갈>은 개인적 고민보다는 한데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에 초점을 두었다. 각각의 종교가 그 자체로 저마다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서로 돕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종교인들의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소설 속에서 실제 각 종교의 성직자들이 서로 돕는 모임을 만들어가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실현해 간다.
실제로 나는 이같은 공동체가 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함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 도와 서로의 완성을 이루고, 다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모든 강물이 바다로 통하지만 한강은 한강대로, 압록강은 압록강대로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 끝무렵에 주인공 수잔이 떠올리는 종교와 성자, 세상에 대한 생각은 바로 나 자신이 오랜 동안 관심을 가져온 부분이다. 불교 기독교 원불교 할 것 없이 많은 종교인들이 자기 종교의 성인이 세상에 다시 온다고 믿고 있다. 과연 성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 부처님, 예수님의 모습으로 오실까? 소설 속에서 내 나름대로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했다. 종교에 대한 편협한 이해와 모순된 삶을 벗어나, 공동체의 삶 속에서 너와 내가 하나이며 성자와 범부가 하나이고, 우리의 현실 삶 곳곳에 각기 다른 이름과 모습의 부처와 예수, 성자의 현신이 충만해 있음을 말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서울에 머물면서 9월경부터 다음 작품 다듬기에 들어갈 예정이다. 고려대장경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아마 내 생애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다. 작품을 쓴다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너무 힘이 든다. 이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조용히 쉬면서 개인수행과 신행공동체 <우리는 선우>의 일도 힘 닿는 데까지 도울 것이다.
이은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