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발하는 불교문화재 도난예방을 위해 90년대 중반부터 본사급 사찰을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는 성보박물관이 전시와 교육, 보존이라는 박물관 고유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교계에서 문을 연 성보박물관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을 비롯해 조계종 11곳, 올 3월 개관한 태고종 선암사 성보박물관 등 모두 12곳이다. 현재 성보박물관을 건립 중인 곳은 불국사 등 11곳에 이르고 법주사 표충사 등 5곳은 자체 유물전시관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들 성보박물관들은 몇몇 성공적인 경우를 빼고는 추진과정에서의 종합적인 계획 수립 미비, 전문인력 확보 등 적잖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는 계획에 없던 시설변경으로 예산을 추가투입하거나 예산부족으로 건립이 중단, 연기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성보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인 한 사찰은 설계 과정에서 습기 대책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공사를 진행하다 문제가 돼 설계 변경 등의 이유로 현재 공사를 중단한 상태다. 또 다른 사찰도 수장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기계실로 유물 훼손이 우려돼 구조변경을 진행 중이다. 수장고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전시관만 개관해 유물 보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찰도 있다.
“그 동안 도난 방지 측면에 주안점을 두고 박물관 건립을 하다 보니 해당 사찰의 전문성이나 운영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고 한 박물관 관계자는 말했다.
이런 현실은 가장 필수적인 전문인력 확보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현재 개관중인 성보박물관 중 미술사를 전공한 학예직 전문 인력을 갖춘 곳은 절반도 안 된다. 전문 인력을 2명 이상 갖춘 곳은 통도사와 송광사, 직지사 등 3곳뿐이다.
전문인력 못지않게 박물관 일을 전담할 스님 또한 중요하다. 주지 스님이나 재무 스님이 겸임하는 형식보다는 전문성을 갖춘 스님이 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직지사 성보박물관장 흥선 스님은 “성보박물관이 박물관다운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 활용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스님들 가운데 역량 있는 분이 배출돼 실무를 총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보박물관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보박물관에 대한 교계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성보박물관을 단순히 도난을 방지하거나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불교문화재를 보존하고 불교문화를 널리 알리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문화재전문가들은 밝혔다. 박상국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실장은 “성보박물관은 일반 박물관과는 달리 사찰의 위상과 포교 전당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능과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개발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장 범하스님은 “성보박물관을 짓고 있는 사찰이 많지만 박물관을 단순히 전시장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법당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에서 참배할 수 있는 시청각 포교당으로 가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