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스님들이 가사에 법계(法階)를 구분한 휘장(표식)을 착용한다면 어떻게 보일까.
9월27일 총무원 4층 회의실에서 열린 조계종 법계위원회(위원장 보성)에서 확정한 내용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앞으로 스님들은 여섯 가지 색상에 백동을 소재로 한 소형 휴대폰 크기의 타원형 휘장을 부착해야 한다. 이는 이틀 전인 25일 의제실무연구회에서 결정해 올린 내용을 그대로 확정한 것이며, 실시 시기는 내년부터다.
가장 낮은 법계인 견덕(4급 승가고시 합격자, 법랍 10년 미만)의 휘장은 가사색, 중덕(3급 승가고시 합격자, 법랍 10년 이상)은 녹색, 대덕(2급 승가고시 합격자, 법랍 20년 이상)은 적색, 종덕(1급 승가고시 합격자, 법랍 25년 이상)은 황색, 종사(종덕법계 수지자, 법랍 30년 이상)는 청색, 대종사(종사법계 수지자, 법랍 45년 이상)는 황금색이다.
휘장에는 법계명칭을 한글로 새겨 넣기로 했으며, 다만 종덕의 황색은 대종사의 황금색과 유사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가사도 법계에 따라 조수를 달리해 착용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법계위원회가 이날 의결한 내용에 따르면 견덕은 7조, 중덕은 9조, 대덕은 15조, 종덕은 19조, 종사는 21조, 대종사는 25조 가사를 착용하게 된다.
이대로 시행된다면 한 눈에 어떤 급의 스님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의제실무연구회는 이렇게 될 경우 비구계만 받으면 큰 스님(?)이 되는 현재의 그릇된 풍조를 바로잡고, 조계종 승려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달리 휘장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다. 율원과 선원은 물론이고 강원에서도 반대여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고, 일부 종회의원과 지방 사찰의 주지, 재가불자들 역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휘장 패용에 반대하는 이유를 종합하면 △스님들이 과연 휘장을 착용하고 다니겠는가 △일반인들에게 우스꽝스럽게 비쳐질 것이다 △굳이 그렇게 구분을 해야만 승가질서가 잡히는가 등으로 요약된다. 휘장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각스님(종회의원)은 “모든 문제를 제도로 해결하려는 편의주의적 발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고, 율원의 한 스님은 “아예 가사색을 두 세 가지로 구분하는 게 낫다. 지금대로라면 휘장이 계급장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의제실무연구회는 이같은 논리를 반박한다. 2000년 8월 스님과 학인 7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0%가 ‘법계에 맞는 의제를 착용해야 한다’는 응답을 했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면서, 법계를 구분하는 데는 휘장이 가장 적합하다는 입장이다.
또 조계종 법계법에도 법계를 주면서 휘장도 함께 수여한다고 돼 있어 휘장 패용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처음 실시하는 제도인 만큼 낯선데서 오는 일시적 거부감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착될 것이라고 의제실무연구회는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휘장 패용과 관련한 객관적이고도 절적한 의견수렴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한명우 기자
mwhan@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