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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명 가운데 대답을 하는 사미(니)는 아무도 없었다. 몰라서가 아니었다.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화두.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할 전부임을 사미(니)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9월 13일 오후 2시 대구 동화사 설법전. 2002년도 기초선원 가을 교과안거(敎科安居)는 그렇게 팽팽한 긴장감으로 일주일째를 맞고 있었다. 질문을 던졌던 기초선원장 지환스님은 “괴로움을 통찰하면 통찰할수록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사미(니)들을 독려했다.
기초선원의 교과안거는 봄 가을로 일년에 두 번 열린다. 전국 80여 제방 선원에서 참선수행을 하고 있는 사미(니)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한 달 동안 수행에 필요한 경전과 논서를 공부하고 참선수행자로서 익혀야 할 각종 예절과 의식을 익히는 기본교육과정이다. 이번 교과안거에서는 특강(지환스님)을 비롯해 기신론(지오스님), 선교결(원융스님), 화엄촬요(수진스님), 전심법요(통광스님), 선관책진(혜국스님) 등의 교과목 강의가 좌선과 함께 진행된다.
조계종단의 비구(니)계를 받기 위해서는 중앙승가대나 동국대, 강원 또는 선원에서 4년간의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데, 여기 모인 사미(니)들은 경전공부가 아닌 참선수행의 길을 택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각각의 선원에서 동ㆍ하안거 8안거를 이수하고, 이번처럼 열리는 교과안거를 6안거 이수해야만 비구(니)계를 받을 자격을 갖추게 된다.
오직 참선에만 몰두해 온 사미(니)들에게 교과안거는 평상시 접하지 않던 책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화두를 놓지 않는다. 걸으면서도, 공양을 하면서도 정신은 오직 한 곳에 집중해 있고, 그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오후 8시 금당선원에서는 38명의 사미들이 일제히 좌선에 들어갔다. 금당선원 옆 선열당과 설법전에서도 76명의 사미들이 죽비소리에 맞춰 좌선삼매에 빠져들었다. 47여명의 사미니들이 좌선에 들어간 설법전 인근의 부도암과 양진암은 깊은 침묵 속에 잠겼다.
이런 선원의 모습이 취재진에 공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선원에 대한 사부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는 취지로 허락된 시간은 단 이틀이었다. 좀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길 꺼려하는 선원의 수행자들.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자신의 생사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 어디까지 왔는지,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현재와 미래.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 보여줄 것도, 관계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들에게 취재가 반가울 리 없다. 세상의 모든 인연을 벗어던진 이들. 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이들은 밥 먹는 시간만 빼놓고는 온종일 화두 하나에 자신을 내던진다.
다음날인 14일 새벽 3시. 하루의 첫 시작 역시 좌선과 입선으로 시작됐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이 팔공산을 휘감았다. 어떤 사미(니)들은 오후불식을 하며 버티기도 하고, 어떤 사미(니)들은 잠자리에서 화두를 들었다가 끝내 놓지 못하고 새벽을 맞기도 한다. 그러나 흐트러진 자세를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과안거에 입교하기 전 이들 사미(니)들은 각자의 선원에서 하루 최소 10시간 이상의 정진을 해왔다. 혹독한 수행을 자처하며 적게 먹고 적게 자다보니 체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선배 수좌들이 하루 세 끼를 다 먹어야만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충고해도 듣지 않는다. 발심에 불이 붙어 미친 듯 수행에 몰두하는 사미(니)들에게 들리는 것은 오직 자신이 품고 있는 화두뿐이다.
아침공양과 도량 청소 후 주어진 잠시의 여유시간. 대둔사에서 왔다는 법강 사미와 어렵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교과안거에 입교했다는 법강 사미는 2년간 해인사 강원에 다니다가 발심을 해 선원에 오게 됐다고 했다. “무엇이 가장 어려우냐”고 묻자, “오죽 했으면 선원에 왔겠느냐”고 반문했다. 생사해탈이 그토록 간절하지 않았다면 산문에 들어설 이유도, 선원을 평생 수행처로 삼을 이유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사미(니)들이 안행(雁行ㆍ기러기가 대오를 맞춰 날아가듯 질서 있게 가는 것)으로 설법전에 모여든 시간은 오전 8시. 해인사 강주 지오스님의 ‘대승기신론’ 강의가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번 교과안거에는 21세부터 시작해 55세나 되는 사미(니)도 있다. 하지만 선원에서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똑같이 깨달음을 좇는 수행자일 뿐이다. 그래서 강의시간에는 선감(禪監ㆍ선원 대중의 안거 관리와 습의를 담당하는 수좌)도 참석한다.
교과안거 기간 중 사미(니)들은 엄격한 청규를 따라야 한다. 교과에 참석할 때는 반드시 안행으로 강의장소에 와야 한다. 산문 밖 출입은 물론 외부인사와의 접촉도 금지된다. 소란을 피워서도 안 되고, 운력에도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화두를 챙겨야 한다.
동화사 기초선원이 조계종 기초선원 중심도량으로 지정된 것은 1997년이다. 제방 선원의 사미(니)들에게 이론과 실제를 겸한 교육을 위해서다. 이를 위해 이 곳에서는 1년에 두 차례 교과안거가 열린다.
이 땅에 선원이 생긴 것은 중국의 선이 전래되고 각 사찰에서 수행풍토가 자리 잡으면서부터다. 그리고 신라시대 구산선문(九山禪門)이 개창되면서부터 선원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스스로 마음을 밝혀 부처가 되겠다는 선정 수행의 오랜 역사가 지금 선원의 뿌리인 것이다. 그렇기에 선원의 수좌들은 스스로가 한국불교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자신들로부터 나온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선원의 수좌들이 갖는 이런 긍지는 역사성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뼈를 깎는 수행,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어려운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법. 바로 그것을 이뤄내려는 서슬 퍼런 의지. 수행의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고, 긍지와 자부심의 원천도 바로 이것이다.
강의가 끝난 뒤 이어진 사시 예불. 봉서루에 모인 사미(니)들이 대웅전을 바라보며 석가모니불을 염송한다. 예불이 끝나면 다시 강의와 참선으로 하루하루를 채우며 10월 5일 교과안거를 회향하게 된다.
하지만 교과안거가 끝났다고 해서 쉴 틈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아니, 사미(니)들 스스로 ‘쉼’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곧바로 3ㆍ7 용맹정진(21일간)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자신의 선원으로 돌아가 수행길을 재촉한다.
“확신이 없으면 버티지 못합니다. 결과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이 길이 내 길이라는 신념 말입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갈 겁니다. 저기 사미(니)들에게 물어보더라도 대답은 같을 것입니다.”
19년째 수행을 해온 선감 대전스님은 설법전 앞에서 기자에게 이 한마디를 던지고는 금당선원으로 총총히 발길을 옮겼다.
글=한명우 기자
mwhan@buddhapia.com
사진=임민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