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장 정대스님은 2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강영훈 이홍구 전 총리, 서영훈 적십자사총재, 이상훈 재향군인회 회장, 김경원 전 주미대사, 강문규 새마을운동중앙회장, 김동완 한국기독교협의회 총무, 김종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총장 등 각계 원로들과 함께 청와대에서 오찬을 했다.
이날 오찬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각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기 위해 마련되었으며, 이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참석자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정대스님은 이날 오찬에서 "미국은 힘이 있는 국가이고 악의축 발언에 대해서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걱정이 많다"며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성실하게, 정공법으로, 성의있게 해야 된다고 본다"고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부디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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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청와대 공보수석실에서 발표한 브리핑 내용 전문이다.
▲ 대통령 : 국가적인 지도자들을 모시고 고견을 듣고자 오늘 자리를 마련했다. 좋은 말씀을 해 달라.
▲ 강영훈 전 총리 : 우리나라 사람들이 '악의 축' 발언에 대해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미국의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보는 것인데 너무 과도하게 보지 말고 유연하게 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둔 준비상황을 들어보니 앞으로 원만하게 조정될 것이라고 느껴져 안심이 된다. 우리 국민들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국회의원들이 항의 방문을 한 것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부시 대통령이 방한하면 김 대통령께서 잘 설명해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정대 스님 : 미국은 힘이 있는 국가이고 이번 발언에 대해서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걱정이 많다. 남북관계가 간신히 열렸고 평양과 금강산을 왔다갔다 하는 것은 과거에 꿈이나 꾸었던 일인가.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상훈 재향군인회 회장 : 이런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신 데 대해 김 대통령께 감사드린다. 우선 대통령께서 국제 감각과 외교 수완을 발휘해서 한·미 동맹관계의 중요성을 재천명한다는 데 대해 대단히 반갑게 생각한다. 그 점이 중요하다. '악의 축' 발언 이후 한·미간의 공조가 차질을 빚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국민들 사이에 있다고 보는데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아울러 김 대통령께서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대량 살상무기 문제에 관해 말씀했다는 것을 미국에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량 살상무기에 대해서는 한·미간에 이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이야기해 주기 바라고, 이미 남북간에도 대량 살상무기 문제를 제기했었다는 점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강문규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회장 : 지지난 주 평양을 방문했는데 평양에 도착한 바로 그 다음 날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1월 29일)가 있었다. 민간단체간에 접촉한 것이므로 북측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변화가 감지되었다. 과거에 비해 올해 민간단체의 북한 지원계획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다.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에 관해서도 이란, 이라크, 북한을 거명했는데 북한은 들러리로 끼운 것인지, 아니면 진짜인지를 궁금해하는 분위기였다. 연두교서와 관련된 남한의 TV 방송과 라디오 뉴스도 다 보고 들었다며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양상들을 볼 때 남쪽에 많이 의존하는 인상을 받았다.
▲ 김종수 신부 : 남북 민간교류에 참여한 실무자로서 말씀드리겠다. 부시 대통령 방한 직전인 19일 금강산에서의 남북 민간교류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민간행사에서의 작은 실수가 불러올 수도 있는 파장을 우려해 일단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북측에도 통보되었는데 아마도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교류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 북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자꾸 만나다 보면 서로 신뢰가 쌓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 아리랑 축전 등 많은 교류의 기회가 있는데 북측은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다. 서로 준비과정에서부터 도움을 주면서 신뢰가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외의 여론을 보면서 국내의 서민들 가운데는 부시의 강경발언이 통일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또 미국인들이나 한국인들 가운데에는 북한을 공격하는 것이 남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들에 기초해서 혹시 오판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크다. 그래서 7개 종단이 모여 '우리는 한반도에서의 어떠한 종류의 전쟁도 원치 않는다'라는 입장을 방한을 앞두고 부시 대통령에게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대사를 초청해서 그러한 입장을 설명할 예정이다. 그러나 반미는 절대로 아니며, 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김동완 목사 : 성서적으로 전쟁으로는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꾸 전쟁으로 가려는 분위기가 있는데 대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방한에서 평화선언을 이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앞서 김종수 신부도 말씀하셨지만 7개 종단이 미국대사를 초청해서, 특히 지난 번 국회의원들의 항의 방문을 보면서 마음 아프게 생각돼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화해와 평화를 위한 선언을 원한다, 한반도에서의 어떠한 종류의 전쟁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전달하려고 한다.
▲ 김경원 전 주미대사 : 외교안보수석의 보고는 훌륭하다. 방한을 통해 동맹을 확고히 하고 테러에 반대하며 대량 살상무기 문제의 해결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잘 표시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2, 3년이 중요하다. 내년으로 다가온 경수로 문제, 북한의 핵 사찰 문제 등 중요한 시기를 앞두고 있다. 미국이 그때의 북한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지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그와 같은 때가 오기 전에 북한과 대화를 통해 긴장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놓아야 할 것이다.
▲ 이홍구 전 총리 : 부시 대통령이나 미국이 9.11 사태 이후 대단한 충격을 받았고 아직도 그러한 충격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우방국으로서 충분히 위로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의 한미동맹의 역사를 강조하고 특히 김 대통령 취임이후 동티모르 파병 결단을 한 것에 대해 미국이 참 고마워했던 점,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에 대한 강력한 지지 표명 등을 상기시키고 강조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우리 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동북아의 3국이 힘을 합쳐 동북아와 아시아라는 차원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북한을 단계적으로 변화시키는 그런 전략을 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부시 대통령의 서울방문을 통해 미국과 동북아의 견고한 관계를 만들어내고 미국과 아시아의 관계를 순조롭게 풀어내며 북한문제에 대해 한·중·일이 협력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이 유럽과 동북아시아라는 중요한 두 축을 우방의 축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서영훈 적십자사 총재 :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이러한 청와대 모임에 여러 번 참석했는데 오늘의 모임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솔직히 각계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것을 느끼면서 참석자로서 보람을 느끼고 대통령께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단과 6.25, 유신을 거쳐 5.17을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남북이 갈라지고 또 남한 내부에서도 양극화가 참으로 심각하게 진행돼 왔다고 생각한다. 지난 2000년 1년간 국회에 몸담았을 때도 참으로 심각한 수준으로 정치권이 양극화되어 있다는 점을 느꼈다.
언론이나 정치지도층이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보면서 화해의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족의 비극이 분단으로부터 시작됐고, 남한 내에서 심화되고 있는 양극의 대립도 화해와 교류협력으로 극복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 강영훈 전 총리 : 한·미간의 공조와 한·미 동맹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고, 우리처럼 북한의 변화를 직접 피부로 느끼거나 목격하고 있는 우리 입장과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미국은 북한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그런 면에서의 상호 보완적 이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정대 스님 : 북한에 대해 대통령께서 노구를 이끌고 평양까지 가는 성심과 진심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북한이 그나마 변화했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북한은 변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성실하게, 정공법으로, 성의있게 해야 된다고 본다.
▲ 대통령 : 작년 10월 상하이 APEC 총회에서 부시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이러한 뜻을 전달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다고 말하는데, 민주주의자가 공산주의자를 못 믿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못 믿는다는 것과, 평화와 국가이익을 위해서 대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미국도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한 바 있으나 결국 미·소 대립도 군사력으로서가 아니라 데탕트로 풀어냈고 데탕트로 소련은 붕괴되었다. 물론 튼튼한 군사적 배경은 기본적인 전제이다. 닉슨은 국교가 없었던 중국인들을 만나러 중국까지 갔으며 그것이 중국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소련과 중국을 변화시킨 레이건이나 닉슨이나 모두 다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었다.
지난 6.15 정상회담 당시 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핵과 미사일 등 대량 살상무기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이는 북·미간 대화로 풀어야 하며, 북·미간에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도 협력하겠다'라는 뜻을 전했으며 그러한 내용이 포함된 문서를 만들어 북측에 전달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미국 측에도 이와 같은 대화와 문건 전달 사실을 설명한 바 있다. 우리는 한·미 동맹을 확고히 하고 테러에 반대하며 대량 살상무기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 미국과 차이가 없다.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데도 차이가 없다고 본다.
2003년은 한반도에 중대한 시기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상당한 대비가 필요하다. 확고한 안보의 기반 위에서 대화로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었다. 우리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앞에서 말한 네 가지의 원칙을 확고하게 유지해 나갈 것이다.
이 기회를 빌어 두 가지 점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 싶다. 먼저 우리가 북한에 대해 약한 것 같이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과거 남북관계 속에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푸에블로호 사건 등 수많은 북한의 공격이 있었으나 한번도 무력으로 응징한 적이 없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들어 서해 연평해전에서 처음으로 무력으로 패퇴시켰다. 9.11 미국 테러사건 이후 사재기 등을 안 하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만약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면 월드컵 준비가 제대로 될 것이며, 제대로 될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받아놓은 일이 많았던 적이 있나.
올해는 월드컵, 아시안 게임, 지방선거, 대선 등 국가적인 대사들이 있다. 이런 일들을 무사히 치러야 한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셨으면 한다. 남북관계가 진전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악화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들이 도와달라.
(전체적으로 참석자들은 의견들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한·미 관계가 현 시점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한·미 양국이 협력해서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음). <끝>
2002년 2월 15일
청 와 대 공 보 수 석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