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주지가 처음으로 소임을 맡은 절에 들어가는 것을 진산(晋山)이라 하며, 이 때 행하는 의식을 진산식 또는 입사식(入寺式)이라 한다.
즉 나아갈 ‘진(進)’의 의미를 가진 진산식은 사찰의 운영과 여러 사무를 관장하는 주지 스님이 사중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어느 때 부터인가 진산식은 새로 소임을 맡은 주지 스님의 명성과 법력에 걸맞게 지역의 스님들과 유지들을 대거 초청한 가운데 장엄스럽게 거행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역포교의 일환으로 사격에 맞는 행사를 가질 필요성도 있지만 일회성 행사에 많은 정재가 소요되고 사찰에 화환 등이 쇄도하는 등 일반 세속의 취임식 장면과 별반 다름이 없어 ‘불교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 교구 본사와 주요 사찰이 주지 진산식을 갖지 않는 대신 신도와 주민들이 함께 하는, 차분하고 뜻 깊은 법회를 열어 신도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스님다운 진산식을 펼치는 주인공들은 바로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신임주지인 평상스님과 염불만일 도량으로 유명한 금강산 건봉사의 주지 영도스님.
평상스님은 지난 9월 23일 일요법회에서의 법문으로 주지 진산식을 대체했다. 그러자 소임자 스님들과 신도들이 ‘스님의 뜻은 참으로 존경스럽지만, 너무 서운하다’며 10일 관음재일에 맞춰 교구 말사 스님들과 신도회 임원들의 상견례만을 갖자고 제안한 상태다. 하지만 평상 스님은 종무원들에게 이것마저 절대로 외부에 알리지 말라며 신신당부하고 있다고 한다.
건봉사 주지 영도스님은 진산식을 갖지 않는 대신 염불만일도량에 걸맞게 21일 오전 9시 30분 ‘청화스님 초청 국운융창 기원 호국 영령영가 천도대법회’를 봉행할 계획이다. 20일 저녁부터는 염불만일회 회원 등 사부대중 1500여명이 참석해 염불삼매로 철야정진 한다.
건봉사 원주 철현스님은 “주지 스님이 개인적인 주지 진산식 보다는 지역발전과 포교, 유주무주 고혼들을 천도하는 행사를 열 것을 지시해 신도들도 신심으로 동참하겠다고 연락이 오고있다”고 말했다.
이름을 드러내지 않을 수록 더욱 만인의 존경을 받는 것은 하심과 겸양지덕에서 나오는 공덕이 아닐까. 스님다운 진산식이 더욱 늘어나길 기원해 본다.
김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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