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이라는 지역 중소도시의 거사림에서 20여년에 걸친 노력 끝에 법당을 마련했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 정도로 가볍게 스쳐 보내선 안될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거사림(居士林). 출가를 하지 않고 불도를 닦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주체로 한 거사불교 즉 재가불교운동은 중국의 명나라 말기부터 청나라 초에 걸쳐 하나의 흐름을 이루기 시작해 오늘에 이른다.
또한 거사불교의 실천 덕목은 대승 보살의 중생 구제에 그 뿌리를 둔다.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는 선언으로 유명한 <유마경>의 주인공인 유마힐 거사의 존재는, 불도의 완성이 출·재가에 있는 게 아니라 중생 구제라는 실천에 있음을 보여 준다. 중국 당나라 때의 거사 방온, 신라 시대의 거사 부설의 깨달음도 재가의 생활이 수행의 완성을 가로막는 일이 아님을 잘 보여 준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출가·재가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깨달음은 신분이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그것을 이루어 가는 과정의 소중함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사회가 복잡다단해질 수록 재가 불자들의 역할은 막중하다. 세간에서 출세간의 정신을 구현해야 할 시대의 거사는 단순한 사부대중의 구성요소가 아니다. 개인의 수행은 물론이거니와 불법의 사회적 실현에 있어서도 앞장을 서야 한다.
대부분 불자들의 신앙 행태를 보면 개방적이다. 재적 사찰이 있어도 폐쇄적으로 그것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대단한 장점이다. 하지만 구심체를 가지지 못할 때는 파편화하기도 쉽다. 이런 점에서 거사림의 활성화가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이번 포항불교 거사림의 법당 마련을 불교 미래의 청신호로 이해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