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철 (서울대 교수ㆍ종교학)
어느새 몇 차례 얼음이 얼고 눈도 내렸다. 지난봄과 여름의 푸르른 기억들은(올해는 빨간색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을 게다) 몇 번의 때 이른 스산한 바람과 함께 아득히 멀어진지 오래고, 유난히 짧았던 가을풍경도 나 같이 마음이 바쁜 이들은 눈길 한번 줄 사이도 없이 스러져버렸다.
그러면 어떠랴.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또 겨울대로, 계절마다 새록새록 마련되는 즐거움이 있다. 마침 여기저기서 스키장이 개장하는 참에 눈치 빠르게 휘날려주는 눈발은 얼마나 기특한가. 골프 장갑을 스키 장갑으로 갈아 끼고 몰려든 인파의 환호는 그야말로 살 맛 나서 못 견디겠다고 진저리를 치는 듯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맘때면 언제나 떨어지는 나뭇잎들보다 몇 걸음 앞서 지레 마음이 졸아들고 앙상해지는 나뭇가지들보다 먼저 추위를 뼛속에 담으며 시린 어깨를 한없이 웅크리는 이들이 있다. 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별다른 의미가 없게 된 김장이니 연탄이니 월동준비니 하는 말이 아직도 천근만근의 무게로 가슴을 눌러대는 그런 이들 말이다.
자신의 즐거운 인생에 푹 빠져서, 또는 고달픈 살림살이에 전념하느라 곁눈질할 새 없이 바쁜 것이 우리네 대부분의 모습이다. 그러나 자기의 울타리를 넘어 늘 남의 사정을 살피면서, 남의 어깨 시린 형편을 보면 같이 시려하는 이들도 있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그런 부부를 소개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훈훈해진 적이 있다. 환경미화원 남편과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부인의 이야기이다. 직업만 들어도 그들의 살림살이가 결코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리라는 것을 누구나 단박에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지난 15년 동안 매년 이맘때면 그해에 저축한 돈을 털어 김장김치를 담가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해왔다. 올해에는 지난여름에 태풍 피해를 극심하게 입은 강원도 사람들에게도 김치를 보낸다고 한다.
남을 돕기보다는 도움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오히려 남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을 쓰는 또 한 예를 보았다. 연골이 생기지 않아 뼈가 제대로 발육하지 않는 연골무형성증이라고, 흔히 하는 말로는 난쟁이인 아버지와 그 병을 물려받은 두 딸, 그리고 생모도 아니고 난쟁이도 아니면서 스스로 그 집에 들어와 딸들을 살뜰하게 키운 어머니, 이렇게 네 식구의 이야기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곡예단에서 일하다가 곡예단이 퇴조하면서 직장을 잃고 갖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장애인이 겪는 고초야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될 것이다.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곡예를 보여주고 호박엿을 팔며 길 위에서 사는 그이들이, 짬짬이 집에 돌아와 쉴 때면 동네 노인들 모아서 음식 대접하고 즐거운 시간을 마련해주곤 한다.
그 이야기들을 보면서 그이들이 우리의 큰 스승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식 높은 고담준론으로 가르침을 주어야만 스승인가?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주고 더욱이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니 큰 스승이다. 그이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베풂이란 꼭 자기 살림이 넉넉하게 넘쳐나서 남는 게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이다. 그이들 앞에서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 못 베푼다는 변명을 할 수가 없다.
원효대사는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서 도(道) 닦는 일을 자꾸만 미루는 사이에도 세월은 기다리지 않고 달려가니 “급하지 아니한가, 급하지 아니한가?”하고 질책하였다. 위에 소개한 우리의 스승들은, 베풂의 복 짓기는 그 누구라도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건만 또 나중으로 미룰 것이냐며 역시 “급하지 아니한가, 급하지 아니한가?”라고 질책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