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시아에서는 테러범들이 극장관람객 수 백명을 인질로 삼았으며, 이에 대응하는 당국이 치명적인 가스를 사용하므로써 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테러, 인질극, 핵 등 섬직한 말이 신문지상에 오르지 않는 날이 없고, 규모 또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굳이 그 이유를 문명충돌이라고 하는데, 그 실상은 십자군전쟁 때의 종교대립과 같은 구도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티안의 분쟁은 이슬람과 유대교의 갈등이며, 미국과 이라크의 대립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이다. 특히 러시아와 체첸의 갈등이 다시 크게 부각되는데, 그 근본적인 이유 또한 종교대립에 귀착시킬 수 있다. 요컨대 문명충돌은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 사이의 상호 불신으로 야기된 것이다. 이들이 떠받드는 신은 같은 절대유일신인데도 그 대리인 즉, 예언자의 해석 차이가 인류사적 참사를 벌이고 있다. 기독교도에게 예수는 최후의 예언자인데, 유대교에서는 아직 최후의 예언자는 등장하지 않고 있으며, 이슬람교는 마호멧이 유일한 예언자이다. 저마다 예언자의 절대유일성을 내세울 때 他는 이단이자, 악마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불교에서는 절대성을 내세우지 않는다. 특히 원효대사의 和諍思想은 종교적 신념 차이를 극복하는 것으로 평등하고 차별 없는 일심(一心)에 근거를 두고 있다.(十門和諍論) 종파 차이는 편견에 불과한 가설의 결과라는 것이다. 종교충돌의 양상은 수학의 입장에서는 공리의 차이로 볼 수 있다. 수학은 이미 “수학진리는 한낱 가설에 불과하다”고 선언했다. 이렇듯 불교와 수학은 한결같이 진리(공리)를 절대화하지 않으며 방편(가설)에 불과함을 알아차리고 있다. 너의 신과 나의 신 모두를 방편으로 여긴다면 갈등은 없을 것이다. 특히 최근 수학은 공리를 설정하지 않은 카오스 이론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현실세계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을 수 없다는 세계관에 입각하는 것이다. 인류문명사는 절대성을 부정함으로써 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는데, 유독 국제역학은 낡은 세계관을 내세움으로써 온갖 비극의 씨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