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 사이에 이룬 경제성장의 결과로 우리는 ‘가난한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로 대변신을 하였다.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벗겨 먹어야 했던 시대는 이제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옛일이 되어 버렸다.
지난 200년 사이에 인류는 말 그대로 파천황의 변화를 겪었다. 무엇보다 인류는 의료와 영양의 개선으로 엄청난 생물학적 성공을 이루게 되었다. 이 세상에 오늘날처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던 적은 없었다. 오직 인류만이 쉬지 않고 늘어나고 있다.
인류의 생물학적 대성공은 이 별에서 인류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생명들의 생물학적 대재앙이기도 하다. 우리의 대성공은 다른 생명들을 무참하게 학살하고 착취한 결과인 것이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죽여 없앤 생명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매일 매시 마음 속으로 위령제를 올려야 마땅하다.
유엔이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라는 것을 정해서 이 문제에 대처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0월 17일은 그것이 제정되고 열 번째 해에 이른 날이었다.
‘세계 빈곤퇴치의 날’을 맞이해서 보도된 자료들을 보노라면, ‘풍요사회’의 진정한 실체에 관해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세계 인구의 20%인 12억 명의 사람들이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간다. 해마다 600만 명을 넘는 어린이들이 5살도 되기 전에 굶어 죽는다. 1960년에 세계 상위 20%의 소득은 하위 20%의 소득보다 30배가 많았지만 1997년에 이 비율이 74배로 늘어났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에서 빌려온 부채를 갚기 위해 원조 받는 금액의 13배를 선진국으로 보내고 있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세계 최고 부자 3명의 재산은 가장 가난한 49개국에 사는 6억 명의 연간 소득보다 많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인류가 대성공을 거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 결과를 모든 사람들이 고르게 나누고 있지 못하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편에서는 개조차 전용식당이며 호텔을 드나드는 데, 다른 한편에서는 잡아먹을 개조차 없어서 자기 살을 물어뜯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부유와 빈곤이 한 배에서 나온 일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에 있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부유는 후진국이라는 나라들의 빈곤과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부유한 사람들의 삶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연관을 정당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 구조와 우리의 의식을 고쳐야 한다.
자기만 잘 살려고 하다가는 부유와 빈곤이 맺고 있는 문제를 고칠 수 없다. 부유해지려고 애쓰기보다 빈곤을 없애려 애쓰는 것이 ‘자비’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다. 그 길이야말로 더욱 살기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우리들이 조금만 절약하고, 이웃을 생각한다면 매년 600만 명의 굶어죽는 어린이들의 희생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있는 나라들이 조금만 인간애를 발휘한다면 오늘도 굶주림에서 헤메이다 죽어가고 있는 생명체들을 돌볼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애완동물보다 못한 인간의 삶에 희한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작금의 인간사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