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신문을 펼치는 것이 실로 짜증스럽다. 신문이 하루를 상쾌하게 출발시키는 청량제라기 보다는 하루의 시작을 우울하게 만드는 전염병균처럼 느껴진다. 이런 우울함이 젖어 있는 초가을의 문턱에 가슴을 뭉클하게 감동시킨 미담이 있다. 감동을 자아내는 백진우 군의 이야기다.
그는 수능을 코앞에 두고 있는 수험생이다. 아버지 백병철 씨는 만성 간경화를 오래 앓아왔다. 서울 중부시장에서 김 도매업을 하던 그가 지난 99년 말에 갑자기 쓰러졌다. 복수가 차서 배가 산처럼 부풀었다. 이때부터 투병이 시작되었다.
그 후 2년여 동안 발작과 응급실행 그리고 입원의 반복이 계속되었다. 부인은 남편의 회복을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집까지 팔아 치료비로 충당했다. 올해 초 그에게는 간이식 수술만이 유일한 치료방법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누가 그에게 간을 떼어 줄 수 있겠는가? 내 몸을 떼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게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들 진우군이 자신의 간을 이식하겠다고 나섰다. 이식수술은 수능시험이 끝나고 난 후 11월말에 하기로 날짜를 잡았다.
그러나 백병철씨의 상태는 점점 악화 되어 11월말까지 생존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아버지는 수능시험을 앞둔 아들이 자신 때문에 앞길이 막힌다고 극구 수술을 거부하였다. 아들 진우군은 수능시험이야 또 보면 되지만 아버지는 한 분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혼수에 빠진 틈을 이용해서 자신의 간을 떼어 아버지의 몸속으로 이식하게 하였다. 12시간이 걸리는 긴 수술이었다. 배꼽에서 명치까지 다시 배꼽에서 옆구리에 걸린 50cm의 긴 흉터를 남기는 대수술이었다. 감동의 드라마이다. 수술을 받은 두 사람 모두 회복을 잘 하고 있다고 한다. 곧 건강을 되찾으면 두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고 싶다고 한다.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를 활력 있게 만들고 살맛나게 하는 것은 엔돌핀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엔돌핀보다 수십배 강한 호르몬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감동할 때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 감동을 받으면 정신건강 뿐만 아니라 육체도 마찬가지로 건강해진다고 한다. 이 감동호르몬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불치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적이라기보다 이 감동호르몬의 초월적인 작용으로 병을 낫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기적의 가르침이 아니다. 신비한 힘을 불교에서 기대한다면 그것은 부처님을 차력사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니란자강에서 육체적 고행을 그만 두신 것은 깨달음이 초인적 능력을 얻기 위한 차력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일이 깨달음이 아닐까? 인간을 감동시키는 일이 바로 깨달음의 본 모습이 아니겠는가?
유교의 효는 자식이 부모를 향한 일방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반면에 불교에서의 효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한다는 보은의 뜻이 강하다. 부모의 자식을 향한 자애가 자식에게는 부모를 향한 봉양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도리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도 연기법적으로 이해 되어진다. 백진우군의 미담은 감동의 연기법이다. 이 감동으로 모든 사람을 나의 부모로 알고 공경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고개를 숙인다.
최종석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