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로 입적 20주년을 맞은 경봉(1892~1982) 스님. 스님은 70여 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써왔으며, 또한 당대 선사들과 나눈 많은 편지글들을 보관해 둔 것으로 유명하다.
스님의 기일에 맞춰 나온 <꽃은 져도 향기는 그대로일세>(예문)는 경봉 스님의 상좌인 명정 스님(통도사 극락암 선원장)과 시인 정성욱 씨가 스님의 일기와 편지를 묶어 펴낸 책으로, 언론은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꽃은 져도...>(예문)는 서문의 무단전재와 공동저자간의 마찰로 출간 의의를 반감시키고 있다.
문제가 되는 글은 책의 서문에 실린 법정 스님의 글 ‘향기로운 꽃, 경봉 큰스님’으로, 이 글은 법정 스님의 허락 없이 사용됐을 뿐 아니라 일부 내용을 임의로 고친 상태로 출간됐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서울 성북동 길상사 주지 덕조 스님은 지난 14일 “문제의 글은 법정 스님이 1985년 <삼소굴일기>에 써준 서문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이므로 책에서 이 글을 삭제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출판사에 보냈다. 결국 이 사건은 정 씨가 길상사를 찾아가 사과하고 책에서 법정 스님의 글을 삭제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공동저자인 명정 스님과 정성욱 씨 사이에 “정 씨가 동의 없이 책을 출간했다”는 주장과 “책 출간에 관해 충분히 상의했으며, 인세도 전달했다”는 주장이 오고갔기 때문이다.
‘자연을 벗 삼아 수행하며 깨달음의 자리로 나아가는 큰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고 삶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겠다’던 출간 의도와는 동떨어진 상업주의적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큰스님의 뜻을 기리기 위한 책이 도리어 누를 끼치는 결과를 가져온 이번 일을 보면서, 책의 출간의도 뿐 아니라 출판 절차와 방법 또한 여법해야 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취재2부 여수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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