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사건이 빈번해지고 있다. 재외 공관이나 외국 대사관을 통한 이른바 기획 망명에서부터, 최근의 선박을 이용한 탈북 등 방법도 다양화됐다.
과거 귀순 또는 월북 사건과는 다른 양상이다. 과거의 경우는 그 수도 미미했거니와 남북 양측 모두 체제 홍보용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오히려 해법이 간단했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최근의 탈북은 주로 생존 차원에서 이루어지는데다 그 빈도도 잦아 남한 사회에서의 적응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 불교계에서 탈북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로 이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우선 불교계에서는 탈북자를 돕는 문제를 ‘포교’ 차원에서 접근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물론 포교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해서는 곤란하다. 오직 부처님의 자비를 적극 실천하는 차원에서 탈북자 돕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상적인 형태의 포교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 한국의 사회 보장 수준이나 사회적 성숙도는 지금과 같은 변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할 만한 정도가 아니다. 따라서 종교계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더욱이 종교계 간의 경쟁적 선교 또는 포교 행위는 당연히 지양되야 할 것이다. 최대한 그들의 입장에서 아픔을 보듬어 안으며 따뜻한 마음을 건네는 것이 우선이다. 불교야말로 그 역할을 가장 자연스럽게 맡아야 할, ‘무주상보시’의 종교가 아닌가.
최근 들어 불교계의 대사회적 구실은 크게 향상됐다. 북한산 관통도로 재검토를 이끌어 낸 것도 좋은 사례다. 탈북자 문제 또한 같은 맥락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영원한 생명의 종교’로 불교라는 이름이 인류사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