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관습은 집안어른, 교사, 선배 등을 존중하도록 가르쳐왔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그 가능성을 말한 것이지, 실제 사회생활에서는 위계질서가 있고, 그런 위계질서를 잘 파악하는 것이 원만한 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현실적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서구사회의 평등과 인권은 어른이나 교사, 선배 등의 위계질서를 떠나 상호간의 인격존중을 요구하는 일종의 추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권위나 청소년의 권위가 올라간 대신 노인이나 교사의 권위가 떨어진 것 등은 오랜 전통과 새로운 가치사이의 충돌가운데 권위적이 요소가 사라져 가는 하나의 흐름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학교는 약간은 혼돈상태에 있다. 교사는 전통적인 권위와 존중을 학생들로부터 기대하는 반면, 학생들은 서구적 인격존중과 평등성에 바탕을 둔 탈권위의 자유로움을 요구할 것이다.
따라서 주입식이 아닌 토론식 교육, 타율적인 강제수업이 아닌 그야말로 전인교육을 지향하는 그런 교실을 원하지 않은 학생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희망사항은 대학입시라는 절대 지상의 명제 앞에 무력한 명분이 되 버린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학부형들은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의 수업도 부족하여 특별과외를 점수만 올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던 할 각오가 되어 있는 듯 전체교육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치열한 입시전쟁터의 이런 교실분위기에 대해서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소수일 것이 자명하다. 부모와 교사의 방침을 순응하고 소위 명문대학을 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수할 각오를 하는 부류를 제외하고는 보통의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만족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두 아들의 둔 학부형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모범생인 큰 아들은 이런 한국적 교실분위기에 잘 적응하여 서울소재의 대학에 입학했다. 다른 집처럼 고액과외를 시키지도 않았고 공부에 대한 어떤 강요도 없었는데도 잘 적응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스포츠를 좋아하고, 친구와 어울리기 좋아하는 둘째 아이에게는 고등학교의 교실분위기는 괴로움이다. 교과 성적이외의 일로는 거의 평가받을 수 없는 그에게는 원하는 대학으로의 진학마저도 불투명한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 예절과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나의 교육방침의 요점은 간결하다. "선생님을 옳다"라는 것이다. 때대로 아이들이 학교 교사를 평가할 경우가 있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간결하다. "선생님은 옳다"라고 한다. 그건 다른 것이 아니다.
교사에 대한 믿음이 없는 학교는 이미 학교가 아니며 거기에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사에 대한 학부형의 폭력,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불만족 등 오늘 우리들의 교실이 너무도 황량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사실 그것은 교사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교육현장의 "제도"의 문제가 아닐까. 입시위주의 교육이 있는한 학교에 대한 불만족의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희재(광주대 교수,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