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축구 전야제에서 독일작가 귄터 그라스는 ‘천천히 축구공이 하늘로 떠올랐다.’ 란 구절로 그의 축시를 시작했다.
하늘로 높이 떠오른 축구공. 이를 신호로 몇 년에 걸쳐 손님맞이 준비를 해 온 이 땅에 이제 한 달여 동안 세계인을 위한 축제 한마당이 펼쳐지고 있다.
이 한마당은 어떤 마당인가. 각국의 대통령과 총리, 국왕과 왕족들, 유명 문학인이며 음악가 화가 대중예술 스타들이 모여들고, 수많은 문화행사가 월드컵 축구 잔치를 장식하는 것을 보면 결코 이번 잔치가 공 잘 차는 사람들의 힘과 기량만을 겨루는 스포츠 한마당만이 아님을 깨우쳐 준다.
‘세계인이 하나 되는 어깨동무’, ‘동방으로부터.....소통’이란 전야제와 개막제에 내놓은 표제어는 인종 종교 언어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 분단한국이 호소하는 절절한 통합과 화해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전야제에 날아 오른 ‘평화의 새’ 로봇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타악기 목어의 상징성도 예사롭지 않다. 로봇 새는 높은 수준의 한국 과학 기술을 뽐내며 미래의 눈부신 과학 발전상을 상징해 보여 준 것일 터이고, 35개의 크고 작은 목어들은 한국 불교사찰의 사물 가운데 하나로 끝없이 중생들을 일깨워 주고 있는 악기가 아닌가. 이번에 타악기로 등장한 목어는 그 깊은 울림으로 세계인의 정신세계에 평화에 대한 일깨움을 재촉 했을 것이다.
세계 몇10억 인구가 동시에 지켜 볼 장면들을 전해 줄 수많은 세계 각국의 카메라 렌즈 초점은 축구공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한국문화, 한국인에게도 맞추어져 있다. 이를 우리는 월드컵 한국의 기회라 보고 있다. 한국을,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단번에 세계에 보여 줄 절호의 기회, 월드컵 행사 주최국에 따라 올 경제 활성화의 기회라는 뜻일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월드컵 개최국들이 누릴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화려한 전야제 개막제 예술행사는 물론, 세계 매스컴들은 이미 한국에서나 체험 할 수 있는 템플 스테이나 세계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개고기 요리, 역동적이면서도 한편 성급한 한국인의 기질이며 교통 사정, 깨끗해진 도시거리와 화장실 문화까지 속속들이 중계 보도하고 있다. 그동안 연마한 기량으로 한국 축구가 16강에 진입 할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이번 ‘세계인의 잔치’는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 10개 도시에서 저마다의 문화 역량을 보여 주는 그야말로 전국적인 한마당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손님들을 맞아 접대하는 주인이며, 그들이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이 땅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돌아 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몇 천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하겠지만 이 역시 국민적 관심과 지원 없이는 세계적 규모의 축제를 감당키 어려울 것이다.
월드컵 기회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첫째도 두 번째도 국민들의 참여 정신이 필요하다. 수많은 행사 마당을 가득히 채워 열기를 북돋우고 세계인과 함께 잔치마당을 흥겹게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훌리건으로 대변되듯 축구에는 사람들의 야성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한국을 찾은 열광적인 세계의 축구팬들이 얼마간의 난동을 부린들 대수겠는가. 이는 축제에서 결여되어서는 안 될 카니발 적 무질서의 해프닝으로 이해해야 할 일이다.
한국의 16강 진출, 더 나아가 8강 진출의 꿈이 영글어도 좋다. 하지만 월드컵 개최국으로서의 성공은 축구의 역량 보다 세계에 드러날 한국인의 문화 수준과 자질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김징자 (칼럼니스트ㆍ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