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가 진전되면서 이제 각 나라들은 세계인에게 문화관광을 체험하는 곳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과거 경제적 가치에 비중을 둔 ‘쇼핑관광’이 이제는 정신적 가치에 비중을 둔 ‘문화관광’으로 발전해 가고 있음은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갈수록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고 이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서로의 오고 감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무역외수지 불균형으로 신경이 쓰이기 쉽다. 통계에 의하면 외국인의 우리나라에 대한 문화관광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외국에 대한 그것에 비해 비교적 낮다고 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불친절 때문일 수 있겠고, 바가지 요금 때문일 수 있겠고, 여러 가지 여행자의 기호에 따른 맞춤여행상품이 개발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는 것은 안내표지판의 무성의와 상세하지 못한 세부지도, 그리고 목적지 표지판의 표기누락으로 인한 여행의 곤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TV에서도 이 문제를 여러 번 다룬 것을 본 일이 있지만 여전히 이 문제들이 잘 해결되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우리의 무관심과 무성의가 아직도 이 문제를 덮어두고 있다. 사실 여행지에서 서로 약간씩 불친절하고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약간씩 바가지 씌우는 것은 애교(?)로 봐 줄 수 있지만 표지판 누락이나 잘못 그려진 지도로 곤욕을 치르는 일은 여행자에게 애교가 아니라 애태우는 일이 된다.
앞으로 월드컵경기와 같은 각종 큼직한 국제행사와 함께 세계화과정에서 템플스테이는 각광받는 문화체험의 하나가 될 것이지만 템플스테이라고 해서 단순히 그들이 숙박만 하고 가는 것은 아니다. 사찰주변을 돌아보고 곳곳에 소개된 우리의 유물·유적에 대한 안내상태를 보고 그들은 우리의 문화수준을 가늠하게 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우리의 전통사찰에 있는 안내판과 표지판의 상태는 어떠한가?
얼마 전 외국인들에게도 제법 잘 알려진 사찰을 다녀온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푸른 눈의 외국인이 드문드문 보였는데 그들은 한 표지판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분명히 이해가 잘 안 된다는 표시였다. 만일 제법 잘 알려진 사찰이 이런 상태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은 더 말할 것도 없으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점점 더 목적여행, 심층여행, 테마여행 등이 세계의 문화관광인들에게 인기를 얻을 예측이고 보면 우리의 사찰 구석구석 하나가 모두 저들에게 중요한 관광자원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하루 빨리 안내판과 표지판을 정비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앞으로 사찰에서 만드는 안내약도만 해도 대충 어림짐작으로 그려 만들 것이 아니라 정확성을 따지는 서양인들에게 거리, 축척, 방향, 위치를 상세하게 한 후 반드시 영어를 병기하여 내놓아야 할 것이다.
또 사찰을 홍보하고 알리는 표지판이나 주변 설치물의 소재<材料>가 무엇이냐에 따라서도 그 사찰의 심미적, 환경적 평가가 달라지고 그것이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로 작용된다. 번질거리고 야한 스테인리스스틸의 소재로 된 표지판과 중후한 청동판에 음각으로 부식한 표지판은 야만과 문화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현격히 보여준다.
고급골동품상의 문화재란 소리는 듣지 못해도 싸구려시장의 조악품(粗惡品)이란 느낌을 받아서는 곤란하다. 왜 스님들의 가사와 바리때가 나일론이나 플라스틱 소재가 아니고 면이나 나무인가를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둘은 다르지 않다.
안내판이나 표지판의 새로운 손질, 거기에 들어있는 상세하고도 친근한 여행정보, 어울리는 적절한 소재의 선택, 면밀한 제작과 잘 구성된 디자인, 크기·비례가 주는 각 요소들의 조화, 이 모든 것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이행할 때 템플스테이는 한국전통문화체험의 하나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박규현 대구대(미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