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만물은 불성을 지닌 고귀한 존재’라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한국 불교계의 비구니스님 위상은 아직 차별적이다. 남성본위의 오랜 역사가 만들어 놓은 잘못된 의식과 계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그럼에도 한국 비구니스님의 존재는 지금 세계 종교계와 학계에서 독특한 위치로 주목 받고 있다. 천년 넘어 면면히 이어온 수행의 행적과 청정법맥은 물론이려니와, 무엇보다 오늘의 세계 불교계에 거의 유일한 거대 비구니 승단을 형성하고 있음과 종단 안에서의 위상 또한 타종교 여성성직자에 비해 비교우위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4일부터 나흘간 미국 아시아 학회 주최로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동양학대회에서 한국 비구니 승단이 집중조명을 받은 것이 이를 다시 한번 확인 시켜 준다. 관심의 결과는 2년 후 ‘한국 비구니의 선수행과 선맥’에 대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는 합의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비구니 승단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받아들이며,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불교 세계화의 또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불교 사상의 위대함이 평등사상에 있다면, 종교계 안 남녀 성직의 평등은 무엇보다 앞서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99년 이미 세계 첫 비구니 율원을 개원하기도 한 한국 비구니계의 움직임은 이런 점에서 자못 역동적이다. 앞으로 위상이 더욱 강화돼 이들이 전통종교들의 여러 한계들을 극복해 나가는데 견인차가 될 것이라 믿는다. 더불어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위해 종단 내 평등구현과 함께 비구니 승단 자체에서의 계율 이행과 수행 등에 보다 철저한 자기 검증 또한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