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누구나 건강과 생명 연장의 꿈을 안고 있다. 의학과 생명과학은 바로 인간의 이러한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유일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나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이용할 수는 없지 않는가?
지난해 과학기술부의 ‘생명윤리기본법(안)’에 이어, 금년 또다시 보건복지부에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안이 발표됨에 따라 종교계와 생명윤리학자들이 의학과 생명과학의 발전에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이유 역시 인간 생명체인 배아를 수단으로 연구내용을 이 법안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복지부 시안은 배아연구를 넘어서 이를 통한 장기 생산까지 인정하고 있다. 이미 미국 생명공학 회사인 ACT 연구팀은 암소의 귀에서 채취한 세포 핵을 이용해 콩팥복제에 성공하였다.
복지부의 생명윤리법은 곧 잉여배아를 이용한 인간 장기 복제의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생명과학자들과 의사들은 어차피 폐기될 배아라면 불임연구나 장기 생산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과연 이 논리가 타당한가?
단적인 예로 시체가 썩어 없어진다고 무조건 실험용으로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은가? 그렇지 않다. 시체 해부조차도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잉여배아에 대해서도 그 정자와 난자 제공자로부터 연구 목적 및 실험 방법 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다음 동의를 얻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안전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잉여배아 연구는 결국 생명의 근원인 여성에 대한 또 하나의 착취가 될 것이다.
배아가 인간이냐 아니면 세포덩어리인가? 이는 해결하기 어려운 종교의 물음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오직 배아만이 여성 자궁에 착상되어 인간으로 발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배아는 세포덩어리처럼 함부로 취급될 수 없고, 오직 인간 존엄성의 한계 내에서만 연구가 허용될 수 있다.
그러자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배아 생산 및 보관에 대한 투명성 확보요, 다른 하나는 생산되는 배아의 수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일이다.
이 두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임신을 목적으로만 배아 생산이 가능하다”는 복지부의 시안은 하나의 탁상공론에 불과하게 된다. 왜냐하면 불임시술 의사들이 임신이란 미명 아래 ‘무한대의 배아’를 생산한 다음, 수정 후 남은 배아를 연구용으로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불임치료 현실이 이 두 조건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실제로 아직 보건 당국은 현재 불임치료센터에서 배아를 어떻게 생산하며, 보관중인 배아의 수가 어느 정도이고, 수정 후 남은 잉여배아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그 실태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또 수정란의 수를 법적으로 제한하는 법 제도 역시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배아의 생명은 오직 연구자의 자비심에 달려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의 윤리, 인공수정 전반에 대한 법 제도 및 체계적인 관리가 선행되지 않는 한, 잉여배아 연구는 생명체를 수단화하고, 나아가 생명체를 멋대로 파괴함으로, 생명경시 풍조를 낳고 인간 존엄성 훼손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김상득 교수
전북대 윤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