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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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 자비와 회향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매우 이지적이라 말할 수 있다. 현상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그 속에서 논리적 모순을 찾아내어 스스로 깨우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중요한 것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인과론이다. 인과론에 의거하여 인도사회의 고질적 사회악인 계급모순을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행위에 따라 고귀한 사람도 천박한 사람도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은 우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며칠 전 몇몇 지인들이 모여 저녘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는 경기도청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연말연시나 국경일에 경기도 관내의 불우청소년 내지 아동복지시설을 위문하는 것이 가장 보람찬 일 중의 하나라 고백했다.

그의 이야기에 의하면 경기도 관내의 해당 복지시설은 대략 110여개 정도이며, 이 가운데서 불교계가 운영하는 곳은 3곳에 불과하다고 했다. 나머지는 대부분이 기독교 내지 천주교 계통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소외된 계층을 위한 그들의 관심과 봉사에 존경심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사회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특히 남들이 하지 않는 궂은 일을 하는 것은 존경받을 일이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이 허전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불교계의 현실을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다종교 사회에서 불교의 사회적 의의는 무엇인가? 불교적 가치를 말하기 전에 사회의 아픔을 공유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필자도 불교를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대다수의 한국불교도들이 추구하는 깨달음의 세계는 진정한 불교의 가르침을 호도할 정도로 관념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불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자신이 설정한 설계도면 안으로 교수의 강의가 들어오지 않으면 그는 별로 신통챦은 학자가 되어 버리기 일쑤다.

진정한 가르침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회와 이웃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작은 공덕이나마 회향하려는 마음이 아닌가 반성해볼 일이다.

차차석(불교학자, 본지 논설위원)
200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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