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랍 23일, 68세의 생일을 맞은 아키히토 일왕은 “나 자신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고 ‘속(續)일본기’에 기록돼 있는 사실에, 한국과의 연(緣)을 느낀다”고 발언, 일본 천황가에 백제인의 혈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간 고대 한국이 일본에 끼친 불교적, 문화적, 정치적 영향은 방대한 관련 사료와 문화의 검증을 거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신성한 혈통을 내세우는 일본의 국가적 상징인 천황이 자신의 혈통이 한반도와 관련 있다고 발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한일 양국의 언론이 이를 상당히 충격적인 발언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도 문화나 종교의 차원이 아닌 가장 인간적인 차원에 속하는 혈통의 유래를 일왕 자신이 직접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 먼 과거로부터 반복된 한국과 일본의 숙명적인 애증의 중심에 불교가 있다. 역사시대의 한일교류는 바로 불교를 통해서 문화와 지혜의 꽃을 피웠다. 한일관계 이면에 자리 잡은 광대한 역사의 면적은 바로 한국과 일본의 불교사의 면적인 것이다.
일본불교의 공식적인 전래는 538년 백제 성왕이 “불상과 경론을 일본에 보내왔으며 불교가 제법(諸法) 가운데 가장 수승한 가르침임을 알리는 글을 전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과 여러 고문헌에 의해서 확인된다.
일본은 불교문화와 사상적 저력을 갖춘 백제로부터 불교를 전수 받은 이후 비로소 문자와 미술, 사원 건축, 먹과 종이의 사용법 등을 비롯한 문화와 기술을 갖게 된다.
불교를 통한 문화와 기술의 전수는 현재까지도 일본불교문화의 정수이며 동시에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나라(奈良) 동대사와 법륭사에 잘 남아있다.
동대사와 법륭사를 세운 스님들이 바로 백제계 도일인(渡日人)의 후손인 료벤(良辨)과 일본불교사에서 보살로 추앙받는 교끼(行基) 스님이며 법륭사는 고구려에서 일본에 파견된 담징 스님의 불교예술이 면면히 살아있는 거찰이다. 고대일본에 불교의 학문과 예술을 전한 나라는 백제뿐만이 아니어서 고구려의 스님 혜자(慧慈)는 오늘날까지 성인처럼 받드는 성덕 태자의 스승이었으며, 신라 원효계의 학승들은 일본에 파견되어 일본인의 사유방법을 형성시킨 화엄사상의 교사로 활동하였다.
나는 지난해 11월 중순 열흘 동안 교토와 나라의 큰 절들과 불교계통 대학과 연구소를 방문한 일이 있다. ‘나라’라는 지명 자체가 한국어의 ‘우리나라’와 같이 국가를 의미하며 이 나라라는 지명은 원래 범어에서 ‘인간이 사는 곳’, 즉 인간주처(人間住處)를 의미하는 “nara”에서 유래한다. 그만큼 유명한 불교도시, 나라의 긴테츠 전철역 앞에는 백제계의 스님, 교끼(行基)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교끼 스님은 국립사찰에는 가볼 수조차 없었던 민중들을 위하여 몸소 다리를 놓고 보시하며 민중을 위한 절을 세운 민중의 큰스님이다. 항상 수천, 수만명의 신자들이 스님 주변에 모여들었기 때문에 교끼는 조정으로부터 불온한 인물이라는 혐의를 받을 정도였으나 이미 생전에 보살이라는 칭호로 불리웠던 인물이 바로 그 사람, 교끼인 것이다.
불교의 전래에 의해서 비로소 학문과 문화에 눈을 뜬 일본은 7~8세기경에 이르러 고대 천황제라는 율령체제(律令體制)를 정비하고 국가진호(國家鎭護)를 추구하는 국가불교를 확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고대 한국에서 건너간 스님들의 지도로 세워진 수 많은 가람들과 불교교육기관들은 현대까지 일본불교의 기초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이처럼 한국과 일본은 불교를 통해서 서로를 발견하고 교류하기 시작했으며 이 모든 것은 불교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필자가 언급한 내용은 전혀 ‘감춰진 이야기’가 아니다. 1984년 9월 당시 일본수상 나카소네는 상고시대의 한일교류사에서 “한국은 스승이며 일본은 생도”라는 명제로 확인한 적이 있다. 이 명제는 이미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누누이 외쳐온 것으로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와 같은 간단한 명제의 이면에는 매우 광범위한 시간적, 공간적 면적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보다 심각한 문제는 우리 교계와 학계는 그간 몇 권의 번역서와 일본 자료를 베낀 논문 몇 편으로만 만족할 뿐 이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너무 하지 않았으며 우리에게는 이 명백하고 준엄하며, 광대한 역사의 면적과 굴곡을 우리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독하며 오늘의 화두로 되살려 새로운 세기의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창조적 노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일지스님 경학회 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