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인이 군 입대의 문제에 대하여 불교의 근본교리와 차이가 난다고 하여 입대를 거부한다는 생각은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합당할지 모르나 불교의 대승적 사상에 비추어 보면 논리에 모순이 생긴다고 본다. 삼국시대의 고승 원광의 입장이 불교와 국가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한 것이라고 본다.
불교의 근본계율은 불살생인데 원광이 살생유택과 임전무퇴를 표방한 것은 단지 신라가 당면한 시대적 상황, 즉 삼국 간에 전쟁이 빈번하여 모든 국민들이 생명을 죽이는 것을 쉽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이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향시키려는 깊은 종교심의 발로가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하면, 살생은 불가에서 원칙적으로 금하는 것이지만 그 결과에 있어서 무량한 공덕과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라면, 그러한 살생을 죄악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세속지선계(世俗之善戒)라고 못 박은 것이다.
이처럼 종교적 계관(戒觀)의 범주에서 탈피하여 국가에 응용되고 민족을 구할 수 있는 실천윤리로서 공익성의 계관으로 변용시킨 것이 그의 종교관이요 국가관인 것이다.
이 세속지선법이 확고부동하게 실천되고, 이러한 신념이 국가와 민족에 바로 직결되는 역사적 계관의 일심귀일로 나아가야 된다고 원광은 생각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세속지선계는 화랑의 수행덕목이 되어 신라 젊은이들을 하나의 이념과 통일된 사상으로 결속시켜 나갈 수 있었고, 나아가서는 고구려와 백제가 끊임없이 범경(犯境)하여 전쟁이 그칠 날이 없던 상황에서 역사와 민족의 철학으로 그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이다.
사실 출가자는 불살생을 근간으로 하는 계관에 투철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미 세속지선계를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고, 그 속에서 임전무퇴와 살생유택을 강조했다는 사실은 적어도 종교적 입장만을 내세워 나라의 처지를 모른 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원광은 국가와 종교가 일원론적인 궤(軌)를 갖추기 위해서는 주권(國王力)·인민(諸衆生)·영토(器世)가 함께 온존해야만 한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가. 나는 바로 위기가 직면한 신라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에 의존하면서 생을 부지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원광이 신라가 직면한 현실과 그 현실 속에서 종교인이 지녀야 할 자세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즉, 불교는 광의적 현실참여 정신을 충분히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호국일선에 나선 사람은 원광만이 아니다. 고구려 승려인 도림도 장수왕의 백제 침공시 첩자로서 활동하여 백제 공략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신라 진흥왕 때 군사지휘관인 거칠부도 승려출신이었다. 백고좌법회나 팔관회 같은 호국적 색채가 짙은 불교의식이 승려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개최되기 시작한 것도 모두 동시대에 일어난 일이다.
불가에서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데 불가피한 살생과 부처님 가르침 사이에서 고민이 있었던 것은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최근 입대를 거부한 한 불자청년의 고뇌도 이 범주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호국을 위해 무량공덕과 민족적 이익을 가져오는 일이라면 불가의 살생은 대승적 차원에서 광의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목정배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