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과 개신교의 신은 물론 유대의 신, 이슬람의 알라신은 유일의 인격신이다. 이들은 여호와, 알라 등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신이다. 이들 사이의 다툼은 “신의 대리인” 예언자에 대한 해석 차이에서 비롯됐다.
예언자의 위치가 달라진 종교세계는 전혀 별개의 세계가 된다. 특히 원리주의는 근대화에 실패한 신의 신봉자들이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길이다. 산업화에 의한 번영은 향락주의를 팽배시켰으며 그들은 이 문명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멸망하고 자신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종말론적인 예언을 믿는다. 그리하여 “알라는 나의 신, 예언자는 나의 지도자,『코란』은 나의 헌법, 지하드(성전)는 나의 길, 알라를 위한 죽음은 나의 최고의 바람”을 외친다.
기하학의 신은 ‘논리이며 절대적’이다. 그러나 유클리드와 비유클리드 기하는 이 다름으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 180˚이상 또는 180˚이하도 될 수 있는 세계를 전개한다. 현대 수학은 ‘공리란 한낱 편리한 가설에 불과함’을 인식하여 서로 다른 공리의 모순을 극복하는 길을 열었다. 다른 공리를 지닌 기하학에 관한 가치의 비교가 무의미한 것처럼 예언자의 해석이 다른 종교세계의 가치비교는 의미가 없다. 문명충돌은 무의미한 종교의 우열ㆍ비교와도 같은 일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좋은 말이나 좋은 낯을 꾸미는 자는 인(仁)의 마음이 적으니라”라고 했다. 말씀, 즉 논리(logos)를 중시하지 않는 일과도 통한다. 엄밀한 논리를 고집할 때 원리주의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한편 불교는 아예 諸法無我(제법무아, 절대적인 공리나 진리는 없음)를 내세우고 ‘신(如來)의 존재’ 여부는 묻지 않는다. 현실적인 모순을 방편(方便)으로 극복한다. 그리하여 노장 사상과 융합하여 선불교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정신 풍토에서 불교에는 문명충돌이나 원리주의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김용운(한양대교수,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