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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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다름'넘어 '원융'
주역의 화택규(火澤?)괘는 ‘다름’, ‘어그러짐’, ‘반목함’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괘의 단전(彖傳)을 보면 그 ‘다름’의 큰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남녀는 서로 다르고 어그러지지만 뜻이 통하고, 만물은 서로 다르지만 그 일이 하나로 귀결된다. 그러니 ‘다름’의 의미가 참으로 크며, 그것을 잘 써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괘를 보면서 오늘의 사회를 보면 참으로 ‘다름’이 끝까지 ‘다름’으로만 여겨져, 그것이 궁극적으로 서로 통하고 하나가 되는 큰 이상이 실종된 듯 하다.

제일 심하게 그러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정치판일 듯싶고..., 여야의 정쟁을 보면 이들이 과연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라는 큰 목표에 대한 생각을 함께 지니고 있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럽다.

그렇게 각자의 이해타산에 따라 뛰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큰 목적에 합치하게 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 있다고 믿는 것인지?

우리 국민들까지 나와는 다른 존재를 소중하게 알기 보다는, 다른 존재에 대하여 우선 적대감과 불안감을 느끼는 마음 구조를 지니고 있는 듯싶다.

다른 존재와의 조화를 이루면서 보다 큰 하나 됨을 지향해 가기 보다는 자기를 중심으로 내세우고 남을 눌러야만 된다는 강박관념이 우리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캐고 또 캐 들어가면 그 바닥에 남북 분단의 상황이 놓여 있다. 상대방의 존재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완전히 없애 버려야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적개심을 키워오던 세월이 얼마였던가?

나와 다른 존재를 없애야 한다는 방식으로 온 국민이 똘똘 뭉쳐서 살았던 세월에 형성된 왜곡된 심성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면서 우리 사회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법의 성품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네”하는 법성게의 첫 구절 ...., 어렵게 볼 것도 없을 것 같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진 두 모습, 그 근본에 놓여 있는 하나의 민족을 보라는 소리가 아닐까?

그렇게 볼 때 둘로 나뉘어진 모습이 제대로 보이고, 서로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다시 하나 됨을 이루는 큰 움직임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성태용(건국대 교수ㆍ본지 논설위원)
200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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