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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세상보기>복제인간 현실화
복제인간 현실화-생명윤리법 제정하자

풍랑을 만난 배 한 척이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왼쪽으로, 또 일부는 뒤로 가야 한다고 소리친다. 선장 역시 나침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이 배는 그만 큰 암초를 만나고 말았다.

지금 배아복제에 관한 생명윤리 논쟁은 바로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는 배와 같다. 1997년 복제양 돌리가 탄생된 이후 인간복제를 규제하자는 목소리와 질병 치료를 위해 배아복제를 허용하자는 목소리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미국 어드밴스트셀테크놀로지(ACT)사의 세계 최초 배아복제 성공은 그야말로 생명윤리에 있어서 하나의 암초와 같다.

왜냐하면 복제된 배아는 여성의 자궁에 착상하면 언제든지 한 인간으로 발달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복제인간은 공상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의 현실이며, 아니 이미 이 지구상의 어딘 가에서 복제인간이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학의 발전 측면에서 보면 이는 분명 혁명이지만, 생명윤리의 측면에서 보면 하나의 폭거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자와 난자 결합에 의한 인간 탄생이란 생식의 비밀은 이제 신화 속으로 사라지고, 한 인간의 체세포를 이용하여 유전자가 동일한 인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이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인간 출생의 신비가 절대자의 손에서 과학자, 그것도 유전의학자의 손으로 옮겨왔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인간은 신에 버금가는, 실질적인 만물의 영장이 된 셈이다.

만물의 영장이, 특히 생명공학자의 손이 이기심의 노예가 되어 더러운 손으로 전락할 때 인류 운명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사실 배아가 인간이냐, 배아복제가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느냐 등과 같은 생명윤리 물음은 과학의 물음이 아니라 철학의 물음이요, 근본적으로 종교의 물음이다.

과학은 경험과 이성에 의해 그 참 거짓을 객관적으로 가릴 수 있지만, 종교는 초이성의 영역으로 그렇지 못하다. 초이성의 영역이기에 생명윤리의 나침반은 없다. 아니 서로 다른 나침반을 갖고 자기 입장이 옳다고 주장한다. 배아복제에 관한 한 어느 입장이 참이라고 논리적 혹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우리는 망망대해에 표류하고만 있을 수 없다. 가만히 있어도 바람이 불어 암초를 만나듯이, 우리 역시 생명공학에 자본이란 바람이 불어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아무런 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것 자체 역시 하나의 정책이기 때문이다.

법률이나 제도가 없다는 말은 과학자 개인의 윤리에 따라 배아복제를 해도 좋다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는가? 그래서 실제로 이미 ACT사에서 배아를 복제하지 않았는가?

서로 다른 종교, 철학,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길밖에 없다.

원래 민주주의의 본질은 한 사회의 제도나 법률의 내용이 어떠한가의 물음이 아니라, 그 제도나 법률을 얼마나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제정하였느냐에 달려 있지 않는가? 생명윤리자문위원회에서 마련한 (가칭)생명윤리기본법을 건설적으로 입법화하고, 또 미국 등 선진국과 같이 연구윤리위원회(IRB)를 제도화하여 과학적 연구의 투명성과 윤리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김상득(전북대교수ㆍ윤리학)
200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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