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보건의료산업 노조원들은 11월 13일 11시 조계사에서 천막농성 돌입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갖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이날 아침 9시 조계종 호법부는 불법시설물을 관리한다는 차원에서 농성용 천막을 철거해 버렸고, 기자회견은 예정보다 3시간 늦은 오후 2시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렸다.
농성용 천막 철거에 대해 호법부는 조계사 경내에 건축물이 마음대로 세워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총무원이 경찰에 시설물보호 신청을 해 놓은 터라 조계사 내에 농성용 천막을 치는 것은 불법이기도 하다. 법적으로 따진다면 백번 타당한 말이다.
하지만 간과해서 안 될 것이 있다. 보건의료산업 노조원들이 이미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 6개 지역병원에서 작게는 100여일, 많게는 1000여일씩 부당노동행위, 임금체불 등을 당해왔다는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그들은 직장과 청와대, 국회에서 시위를 벌이고 명동성당 등에 도움을 구했었다. 명동성당이 시위장 제공에 난색을 표명하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조계사까지 찾아왔다. 부처님 품안에서 도움을 받고자 온 것이다.
불교계가 생존권을 지키고자 도움을 청하는 그들을 응당 따듯하게 맞이해야 함은 인지상정이다. 조계종이 시설물을 보호한다는 구차한 이유로 자비심을 포기한다면 또다시 불교계에 질타가 쏟아질 우려가 높다. 이미 불교환경연대, 실천승가회 등 9개 교계 단체는 “천막 철거는 심하다. 조계사의 질서를 준수한다는 조건 아래 노조들을 수용해 주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초겨울 대웅전 부처님 앞에서 떨고 있는 중생을 보듬어 안을 수는 없는 것일까.
강유신(취재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