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 이제 겨울이 시작되는 쇠락의 계절이다. 무성했던 욕망이 서서히 그 껍질을 벗어 던져야만 하는 나목(裸木)의 계절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그동안 충만했던 기운이 희망이요, 복(福)이요, 덕(德)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훨훨 벗어질 때 희망, 복, 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부처님은 해탈(解脫)이라고 했다.
인간의 문화는 정신문화와 과학기술의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과 정신문화의 병행발전을 이룩하는 것이다.
과학기술과 정신문화의 조화와 균형 속에서 삶의 행복감, 사회정의, 안정감이 이룩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시기 과학기술 위주의 사회가 정신문화의 가치를 소중히 할 수 있도록 값진 정진을 해야 한다.
역사의식이 결여되고 문화정신이 결핍되면 미래지향적 사고와 사유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 속에서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도 망각되고 부정된 역사의식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교육적 갈등구조가 그대로 사회에 투영되어 어떤 것이 이질적 요소이고, 본질적으로 지향해야할 목표가 무엇인지를 구분하지 못해 불신만 양산시키고 있다.
지구촌은 새롭고 도전적인 급변의 질서에 대처 해나갈 지혜와 용기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동서남북의 그물짜기식 변화의 와중에서 민족정신의 근원과 본질이 망각되지 않으면서 세계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급의 많은 보살들이 출현하여 사회질서 재편에 그 힘을 모아야 한다.
누군가가 처음 시도했더라도 전체를 이끌고 가는 힘이 모아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나목의 깨벗은 혹독한 겨울이 오히려 새봄의 새 잎, 꽃, 열매를 이끄는 해탈의 길일 것이다. 바로 지금, 화합과 해탈을 위한 사회전체의 인식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조용길(동국대 불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