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서 교수(서원대 영어교육)
대한적십자사 발표에 의하면 지난 8일부터 아프가니스탄 이재민 지원 성금을 접수한 결과, 22일 오전까지 고작 1건 14만원이 접수된 반면, 한적이 지난달 12일부터 접수중인 미국 테러 사태 관련 성금은 지난 19일까지 2천894만93원이 접수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적 관계자는 "아프간 전쟁과 같은 큰 사태에 대해 이처럼 성금이 적게 접수된 것은 전례없는 일"이라며 "아마도 테러 주범으로 전해지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이나 탈레반 정권에 대한 감정 때문에 이재민 지원에 소극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석이 정확하다면, 우리 국민들의 약 60% 이상이라는 종교인과 그들의 종교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걸림없는 큰 자비심”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실천을 강조하는 불교로서는 더더욱 철저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부처님이 가르치시고 실천하신 자비는 무차별적이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똑같이 존귀하기 때문이다. 온갖 고통으로 윤회하는 중생들의 분별심과 망상에 치우친 견해로 보면 차등이 있겠지만, 부처님의 경계에서 보면 ‘누구나 동등하게 괴로움의 바다에서 윤회하는 중생이며, 마음 한 번 고쳐먹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따르면 성불할 수 있는 존재’이다. 고통에 테러로 피해를 입은 미국인의 고통이 따로 있고,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고통이 다르며, 탄저병 테러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고통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당신의 목숨을 노리고 달려드는 앙굴리마라 같은 사람도 감화시켜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셨다. 부처님의 자비행은 신분과 계급을 초월하였을 뿐 아니라, 선악의 경계조차도 허물어버렸음을 우리는 경전을 통해 알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오직 고통을 보셨을 뿐, 사람의 겉모습과 행위를 보지는 않으셨다. 고통은 고통일 뿐 인종과 종교적 신념, 성별과 나이 등에 구애받지 않음을 안다면,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고통과 테러로 피해를 입은 미국인들의 고통은 둘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바로 불교의 지혜이며, 이런 정신에서 나온 자비만이 궁극적으로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
불자들이 새벽과 저녁예불에서 빠지지 않고 되풀이되는“원컨대 법계의 모든 중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불도를 이루어지이다!”하는 서원이 참된 발원이다. 동남아 일대의 불교국가에서 지송되는 “살아있는 생명이건 어떤 것이든, 동물이건 식물이건 남김없이, 길거나 커다란 것이든 중간이건 짧건, 미세하건 거칠건,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든, 멀리 살건 가까이 살건, 이미 생겨난 것이건 생길 것이건, 모든 삶은 행복하기 빕니다”라는 발원을 삶 속에서 구현해야 한다. 적어도 불자의 자비행은 상에 머물지 않고, 무조건적이고, 평등하고, 서로를 최상의 행복과 깨달음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