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한 필치의 이문구 단편소설 '장평리 찔레나무'(신간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중 한편)를 읽으면 오늘날의 도시와 시골인심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농사짓는 시골 형은 그 동안 써왔던 제초제가 바로 고엽제 성분임을 알고나서 집에서 먹을 만큼의 고추만 농약도 비료도 안 주는 유기농으로 짓는다. 하지만 서울에 살고 있는 약삭빠른 동생부부가 이를 알고 "조금만 따 갈게요" 하고는 막 익기 시작하는 유기농 고추밭을 거덜내 버리고 만다. 형으로서야 그야말로 일년농사 헛것이다. 그 뿐 아니다. 동생은 형더러 콩농사 좀 많이 지어 나누어 달랜다. 그 놈의 미국산 유전자 변형콩 대문에 '션한 콩국수'도 '뜨끈한 되비지 찌개' 하나 맘놓고 못먹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는 워치게 먹구, 달걀은 또 워치게 먹으며, 우유는 워치게 먹을겨. 사료라구 생긴 건 죄다 수입콩으로 만드는디…" 시골과 도시 할 것 없이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요즘의 형편을 보여주는 형제간 대화다.
IMF 이후 서민층 장롱 속 금붙이만 노출시켰던 '금모으기 캠페인' 때 형은 동생에게서 받았던 행운의 열쇠 속에서 쇳가루를 발견한다. 그램수 높이자는 속임수다. 요즘의 납들어간 게나 복어, 머리 속에 돌넣은 조기도 따지고 보면 그램수 높이자는 약은꾀에서 나왔다. 황산이 든 식용유며 비료 넣어 키운 콩나물 등 요즘의 유해불량식품은 차라리 독을 먹는 것이라 보아야 옳다 한다.
'신토불이'라는 오랜 구호 덕분에 소비자들에게 역사 이래 대접받고 있는 국산 농축수산물이지만 그것 또한 믿을 것이 못된다. 불신사회 가운데 먹을거리를 믿지 못하는 사회가 가장 심각한 불신사회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를 근본적으로 고치려 하기보다 '장평리…' 형제처럼 '나만은 안전한' 방법만을 찾으려 한다. 국회의원을 낙선시키고 재벌을 굴복시키는 거대한 '새힘', 시민운동도 그런 건 하찮은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유해불량식품에 독하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삶의 안정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우선 순위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김징자(언론인,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