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라 할 수 있는 조계종 겉보기의 안정과는 달리 그 밑바닥에 심각한 불안의 씨앗을 안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불안의 요인은 98, 99년에 걸쳐 일어났던 분규 사태가 여전히 근본적인 해결을 보지 못한 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화개혁회의에서 총무원과 중앙종회를 상대로 낸 소송이 아직 6건이나 진행중인 채로 있다. 그 판결의 결과에 따라 현 조계종단이 또 다시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소송이 진행중이라는 것은, 그 뿌리에 분규사태가 빚은 불화와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설사 소송이 현 종단의 안정을 흔드는 판결로 귀결되지 않는다 하여도, 그 바탕에 놓여있는 불화와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조계종단은 항상 내부적인 문제에 발목이 잡힌 채 불법의 중흥을 위해 비상하는 종단으로 서지 못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화합을 위한 노력이야말로 조계종의 앞날이 걸린 가장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조계종단의 분위기와 움직임을 보면 이러한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실종된 듯 하다.
지난 종회는 불미스런 유회사태로 인하여 멸빈자의 사면을 위한 종헌개정안에 대한 보고조차 이루어질 기회가 없었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현 종단의 지도급 인사들의 무책임하고 무감각하며, 안이하기 짝이 없는 종단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개혁을 통하여 정화회의 쪽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우월한 도덕적 지위를 확보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러한 안이한 대응이 계속된다면 조계종의 화합은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하루 빨리 종단의 화합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고, 큰 원칙 아래에서 사면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런 큰 자세를 지니는 한편 지속적인 개혁을 통해 상대적으로 정통성에 있어서 우월한 지위를 확보해야만, 정화회의 쪽에 대하여 사면을 시행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반성과 참회를 요구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대의명분에 합당한 사면을 이룩하고, 그 화합된 힘으로 미래지향적 과업에 힘을 합하는 것이 지금 조계종단이 안고 있는 최대의 과제임을 다시 한번 힘주어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