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우 기자 <취재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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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 탄저균 공포 등 피의 악순환을 진정시킬 묘안이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본지는 큰 스님들에게 전화질문을 드렸다. 질문 내용은, 해결 가능성은 바늘구멍만해지고, 전쟁은 확대일로에 있는 상황에서, 국가적 차원이든, 개인적 차원이든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취재부 기자 4명이 동원돼 거의 하루 종일 취재한 내용을 종합한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일부 스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스님들이 질문과는 동떨어진 답변을 하거나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에 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큰 스님들의 답변을 일부 소개하면 이렇다.
“업이야. 스스로들 지은 업인데 내가 뭘 얘기해.” “화합하라고 해서 되겠나, 대자연에 놔두고 보는 거지.” “무력은 안돼, 그러니까 아직도 종교가 공존을 못하지.” “중생세계는 싸우는 세계야. 자기종교가 옳다고 고집하니까 싸우게 되지.” “부처님 사상이 필요해. 그거면 됐지 뭘 또 얘기해.”
시자 스님으로부터 큰 스님과 통화 자체를 거절당한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는 “그런 것을 왜 묻느냐”는 항의 아닌 항의를 받기도 했다.
불가(佛家)에 ‘양구(良久)’라는 말이 있다. ‘잠시 아무 말 없이 침묵한다’는 뜻으로, 보통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을 때 스승이 잠시 침묵하는 것을 일컫는다. 대부분 스님들은 질문의 절반도 하기 전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님들의 ‘침묵’을 ‘양구’라고 여기기에는 무리였다. 백번 양보해 ‘양구일설(良口一舌ㆍ말은 다르지만 뜻은 같다)’이라고 여기고 싶어도 개운치가 않다.
중생이 불타는 집에 갇혀 있는데, 갖은 방편을 써서라도 구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인데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불자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이 스님들을 사표(師表)로 의지하고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