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진정한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로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답은, 출가 공동체의 청정성과 화합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청정성과 화합성을 이루는 근본은 무엇인가? 두말할 필요 없이 그것은 그 공동체를 이루는 스님 개인 개인의 수행력과 청정한 계행이다.
요즘처럼 한국 불교 종단의 청정성과 화합성이 내외적으로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스님들의 청정한 계행과 치열한 수행에 대한 아쉬움에 목말라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즈음에 접한 원산스님의 무문관 출관 소식은 오랜 가뭄 끝의 단비와 같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초대 교육원장을 지내시며, 승가의 본분을 강조하셨던 원산스님이시다. 그 분이 당신의 말을 무문관 입관으로 실천하신 것 자체가 우리 불교계의 저력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무문관의 엄하고 철저한 수행방법은 모든 불자들이 다 알고 있다. 하루 한끼의 식사, 일체 외부의 접촉을 끊고 오로지 깨달음의 외길을 추구하는 그 치열한 과정의 3년을 마치시고 출관하시는 원산스님은 또 다시 우리 불교계를 일깨우는 빛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 분의 수행 공덕이 우리 불교계를 새롭게 할 것이다. 아니 그분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또 다시 칩거에 들어가신다 해도, 그런 스님이 계시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인 것이다.
수많은 스님들이 말없는 가운데 치열한 수행의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원산 스님과 같은 분은 소임을 그만두고 바로 무문관에 입관하셔서 두드러지게 드러난 예일 것이다. 해마다 하안거 동안거에 입제하는 스님들의 수가 늘어나 안거할 선방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은 우리 승가가 외적인 혼란 속에서도 그 수행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것이야말로 한국 불교를 일으켜 세울 원동력이다. 원산 스님은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큰 모범으로써 불교계뿐만 아니라 오욕락의 추구에 만연된 현대사회에 새로운 빛을 던지는 귀감이다.
지식과 정보의 홍수라 할 수 있는 정보화시대이기에 청정한 수행과 계행이 더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욕망의 추구로 만연된 사회이기에 청정한 수행자의 모습은 새로운 희망으로 드러난다. 원산스님의 장하신 수행이 우리 불교계를 바꾸고, 우리 사회를 바꾸는 귀한 씨앗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불교계의 자각과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