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에 해인사 청동대불 불사를 비판하는 수경스님의 글을 나간 후 해인사 수좌 스님 20여명은 6월 18일 서울에 상경해 총무원에 수경스님의 사과문을 받아내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실상사를 찾아가 수경스님 처소의 방문을 뜯어내고 집기를 훼손시키는 등의 소동을 벌였다.
안거 중인 수좌 스님들의 이같은 행동이 알려지자 불교단체는 물론 일반 불자들의 비난 여론이 봇물처럼 쏟아졌고, 실상사도 해인사의 공개사과를 요구하고 나서는 등 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파문이 일고 있다.
소동도 소동이지만 안거 중인 수좌 스님들이 선방을 박차고 나온 것부터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교계는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다.
안거는 부처님 당시 출가수행중인 사문들이 비가 내리는 우기에 90일간 한 곳에 모여 수행을 한 데서 비롯됐다.
무더위 끝에 우기로 접어들면 작은 생명들이 기어 나오고, 이때 돌아다니다가는 미물을 밟아 죽일 염려가 있기에 생명을 보호하자는 의미도 안거에는 내포돼 있다.
오늘날에도 안거는 출가자로서의 직분을 상기하고 느슨해질 수 있는 청정생활을 다잡기 위해 외출을 금하고 엄격하면서도 철저하게 수행하는 제도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해인사 수좌 스님들은 안거의 참뜻과는 반대되는 폭력적이고 반불교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수행기풍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금명간 안거 중에 선방을 나선 이유에 대한 입장표명을 할 것이라고 밝히고는 있지만,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대중을 이해시키기는 힘들 것 같다.
한 스님은 “안거 중에는 수행하다 죽어도 장사를 지내지 않는데 어떻게 선방을 뛰쳐나올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혀를 찼다.
선방은 임제스님이 말한 “부처가 되려면 부처를 죽이라”는 칼날 같은 선의 정신이 흐르는 곳이다. 그렇기에 바람잘 날 없는 불교계에서도 선방만큼은 한국불교의 희망이라고 여겨져왔다.
그런데 그런 선방마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세를 가져야 할 수좌 스님들마저 무너져 버렸다. 한국불교를 조문(弔問)해야 할 날이 멀지 않았음일까.
한명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