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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 연꽃사고
고려 충선왕(忠宣王)이 원(元)나라 서울인 연경(燕京)에 가 있을 때 인연을 맺은 여인이 있었다. 다시 고려에 돌아오게 되어 헤어질 무렵 충선왕은 이별의 정표로 연꽃 한 송이를 그녀에게 주었다.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이별의 설움에 울던 그녀는 연꽃을 받은 심경을 시로 읊었다. ""이별의 선물로 받은 연꽃 처음엔 붉디붉다가도 꺾인 지 며칠 안되어 사람 따라 시드네.”애달픈 심정을 노래하게 한 그 이별의 순간에 충선왕은 왜 연꽃을 선물했을까?

주렴계(周廉溪)의 애련설(愛蓮說), 즉 '연꽃을 사랑하는 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국화는 숨은 이(者)며, 모란은 부귀한 이(富貴者), 연꽃은 군자(君子)이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 속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않고, 속은 비었으되 겉은 곧으며, 덩굴지거나 가지치지 않고, 깨끗하게 씻었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꼿꼿하게 심어져 멀어질수록 향기롭고 좋은 눈빛으로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지고 놀만큼 업신여길 수 없다.

이 글의 어디를 보아도 다 아름답고 뜻있는 글이지만 나라를 빼앗긴 충선왕이 그 와중에 사귄 여인과 헤어질 때의 마음을 요즘의 정리에서 읽을 때 눈에 선하게 박히는 곳이 바로 '덩굴지거나 가지치지 않는다(不蔓不枝)'는 내용이다.

덩굴진다는 것은 담쟁이나 나팔꽃, 덩굴장미들처럼 취미나 이해가 통하는 자들끼리만 어울린다는 것을 말하며, 그런 사람들끼리만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패거리사고라 한다. 가지친다는 것은 누구와도 같이 어울리지 못하는 나홀로 똑똑이라는 말이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해 버리는 것은 나홀로사고라 할 수 있다.

원나라의 침입 때 서로의 의견과 힘을 중도, 화합적으로 잘 통합하지 못하고 패거리사고와 나홀로사고가 횡행하도록 방치하므로써 통한을 삼키며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국땅을 넘나들어야만 했던 처지와 그 처지를 잠시나마 잊고 사랑에 빠졌던 자신에게 충선왕은 연꽃을 준 것이리라.

미국의 지성대통령 케네디가 쿠바를 침공한 것과 같은 빤히 보이는 정책적 실수를 범하는 것은 사고의 유연성이 없는 패거리가 의사결정을 하였기 때문이다. 요즘의 우리 사회에서도 이러한 패거리사고가 횡행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덩굴지거나 가지치지 않는 연꽃의 사고가 소중한 때이다.

법현(종단협의회 사무국장)
200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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