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존의 가치관만 갖고는 도저히 감당 못할 상황이 끊임없이 돌출하는 정보화 시대 속에 우리가 겪는 갈등은 고루한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버리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마치 가라앉고 있는 배의 갑판 위에서 서로 안락의자를 뺏으려고 날뛰는 것과도 같은 어리석음이다.
제주도는 해방 이후 최대의 양민학살의 비극을 경험한 지역이며, 아직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세월의 흐름 속에 망각되기만을 기다리는 중인데, 최근 한 거물 정객은 제주도를 '폭동의 지역'으로 지목하는 발언으로 상처입은 사람의 마음에 되려 소금을 뿌린 일이 있었다. 어느 특정 지역을 지목하여 '반란'의 명소처럼 여기는 배경에는 자기 지역만이 건전하고 우수하다는 '팔을 안으로 굽히는' 고루한 마을주의적 사고가 숨어 있다.
1923년 동경에서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한국인은 무조건 '조센진'이라는 이유만으로 몽둥이, 삽 등으로 학살당했으며, 그 희생자는 7000명에 달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출신지역에 관계없이 학살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제주학살과 동경학살은 한결같이 병적인 우월감으로 타지역 사람을 무시하는 데서 시작됐다. 한반도가 두 조각으로 분단되어 반세기 이상 대립해 온 것도 서러운데 부당하게 희생을 당한 지역을 지목하여 어디는 섬, 어디는 폭동이 일어난 곳이라는 식으로 차별을 일삼는 것은 조선시대의 차별의식과 전혀 다름이 없다.
한국인은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배를 타고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 내에는 어느 지역이든지 제주 지역민과 친인척 등으로 깊은 관련을 갖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선거 때 그처럼 한 표를 애걸한 위인이 병적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는 꼴이 역겹다. 정보화 시대는 지금 일어난 일이 금방 되먹임 되어 사회 전반에 반영되며,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이른바 나비효과가 수시로 발생한다. 불교는 한 순간의 내 언행이 곧 중생에게 반영되어 나에게 되돌아오는 '업'의 무서움을 경고하고 있다.
김용운(한양대 명예교수,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