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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극한적 대립 안된다 - 김병관 교수 (아주대 사회학과)-
세상사는 과연 제로섬게임일까? 사안의 성격에 따라 더러 그럴 수밖에 없는 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는 상황에 따라, 또 관계된 개인이나 집단의 대처양상에 따라 제로섬게임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의 진리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로섬게임이 우리 사회의 작동원리이어서는 곤란하다. 제로섬게임은 미개한 사회의 전형적 갈등양식이다. 나 하나 더 먹기, 상대방 입 속의 떡 빼앗아먹기, 너 죽고 나 살기의 제로섬게임은 성숙한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인류의 발자취를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제로섬게임은 종종 일어난다. 왜? 그것은 인간사회에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해관계의 상충과 그로 인한 갈등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있다.

원색적 이해관계의 추구는 갈등의 증폭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문제의 해법은 타협과 상생의 길의 모색에서 찾아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세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 첫째는 갈등의 상대방에 대한 인정이요, 둘째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이해관계의 추구이다. 갈등의 상대방에 대한 부정은 타협의 여지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며, 또한 단기적 관점에서의 즉각적 이해관계의 추구는 극한대결을 부를 수 밖에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갈등의 전개 및 조정과정에서 협의의 즉각적 이해관계 당사자를 뛰어넘는 대의와 이를 견지할 수 있는 조정자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해관계의 상충과 갈등의 전개과정에서 조정은 보다 높은 차원의 이해관계에 종속되어야 한다. 다수의 이해관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이해관계의 조정에는 엄정한 규칙을 적용하고 또 직접적 이해관계 당사자의 틀을 뛰어넘는 상위의 이해관계를 상기시킬 수 있는 적극적 중재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번 의약분업 사태는 우리 사회의 미성숙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이다. 의약분업의 궁극적 이해관계 당사자는 우리 국민 모두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국민의 이익은 완전히 실종되어 있었다. 이것에 대한 근본적 책임은 정부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 소동을 벌였는지 조차가 불분명하게끔 사태를 몰고 간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의약분업의 즉각적 당사자는 의사, 약사, 제약업계, 의료보험당국이다. 문제가 있는 상태이긴 했지만 오래 동안 지속되어 온 제도적 균형을 바꾸는 것은 정부의 밀어 부치기식 오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정부는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은 변하는데 정부는 아직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뻔히 눈에 보이는 이해관계의 상충을 두고 사전 조정도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밀어부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왜 이 사태를 제로섬게임으로 몰고 갔는가? 진정 국민을 볼모로 삼은 것은 정부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협회의 대응방식은 어떠한 관점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다. 전문가집단으로서의 사회적 존경과 대우를 원한다면, 스스로 경제적 이해관계에 속박되는 행로를 택하지 말았어야 했다. 더군다나 국민의 생명과 보건을 다루는 위치에 있지 않은가. 현실적으로도 잃은 것이 많은 선택이었다.
유럽과 일본의 시위문화로부터 교훈을 얻어야겠다. 이해관계 상충의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타협의 자세, 장기적 관점의 대화가 있어야 집단간의 갈등이 공존과 상생의 길로 이어지는 것이다. 같이 사는 길을 택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200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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