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무슨 명목으로 인간을 죽일 수 있는가? 미물의 생명도 귀중한 것이라면 동류인 인간의 생명을 죽인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그것이 공적인 틀에서 용인되는 것이 또한 인간의 세계이다. 사형제도라는, '보다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라는 구호 아래 이루어지는 합법적인 살인이 여전히 용인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그러한 제도의 효용성 여부를 떠나 우리는 그 근원적 의미를 되물어야 한다. 법에 의한 살인은 과연 살인이 아닌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법에 의해 인정하고서, 그것을 통해 살인을 비롯한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것인가? 살인은 모든 범죄 가운데서도 가장 큰 죄이다. 살인을 비롯한 죄를 막고 또 징계하기 위하여 살인이라는 방편이 동원될 수 있는 것인가? 방편이라는 것이 목적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도 그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어떤 목적을 위하여도 살인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지상의 명제로 자리잡고, 법에서도 그것이 가장 큰 원칙으로 자리할 때, 비로소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는 것이 우리 모두의 가장 큰 도덕원리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일반의 논리로 말해도 이러하다면, 세계의 어떤 종교보다도 생명의 소중함을 근본적인 가르침으로 하는 불교에 있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형제도를 문제삼고 그것의 폐지를 주장하는 움직임은 당연히 불교계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야 했고, 폐지 운동의 선봉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고 그것은 사회문제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지 못한 우리 불교계의 부끄러움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종교계의 사형제 폐지운동에 동참하면서, '불교 사형제 폐지운동 본부'와 원불교 교단 등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은 불교가 그 진면목을 발휘할 분야에 제대로 발을 내밀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좀 뒤늦었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생명존중 사상에 바탕한다면, 어떤 다른 종교보다도 든든한 뿌리를 가지고 이념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불교가 이 운동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모든 생명이 각각 제 삶을 누리는 조화로운 공동체, 그것이 바로 불국토가 아니겠는가? 그런 이념 아래 생명의 참 가치를 존중받는 사회, 어두운 그늘이 없는 사회 건설에 앞장서는 일이 불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나가야 한다. 사형제도 폐지 주장이 부정적 측면의 제거라면 그를 밑받침하는 적극적 생명존중의 사회 구현에 불교가 앞장서야 하는 것이다. 사형제도 폐지 운동을 계기로 이러한 두 측면의 사회운동이 불교계 전반에 확산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