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 양반은 저런 엉뚱한 소리를 할까?"
자신의 주장을 성급히 관철시키고 싶은 마음은 이렇게 속삭인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스리고 그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그 분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가 잡히기 시작한다. 그것은 처음에는 이성을 통해 이해되고, 그 다음에는 가슴에 와 닿는다.
"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이러한 조그만 눈뜸이 내 가슴에 잔잔한 기쁨으로 번져 나간다.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2월 9일 열렸던 화엄광장 첫번째 마당. 그날 토론의 내용도 귀했지만, 서로 마주하여 마음을 열고 이야기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자리였다. 우리 중생이 모두 부처이고, 불성을 가진 존재라는 믿음, 이 믿음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그 불성의 빛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찬연히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우리 불자들이 아닐는지? 우리의 조그만 삶 속에서 느끼고 깨닫는 것들, 그것들은 불성과는 다른 것으로 하찮게 취급하는 것이 우리 불자들의 병이 아닐는지? 한 분 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는 동안 그 분의 삶을 통하여 우러나온 귀한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깨달음의 빛이라고 느껴져 오면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엉뚱한 말까지 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 궁극적인 깨달음에만 매달리지 말고, 우리들의 조그만 깨달음을 모아가는 깨달음의 민주주의를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요?"
궁극적인 부처님의 깨달음을 향한 수행에 지금 우리들이 삶 속에서 느끼는 조그만 깨달음을 어디 견줄 수야 있겠는가만, 그렇다고 하여 우리들이 하루 하루 부처님의 법을 실천하면서 느끼는 조그만 깨달음들을 하찮은 알음알이로 치부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궁극적인 깨달음을 저 먼 곳에 두고, 거기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과 더 먼 것은 아닐까?
우리가 조그만 앎에 만족하여 안주하고, 그것을 고집하여 남과 다투려는 생각만 버린다면, 조그만 깨달음을 모으고 또 서로 나누는 가운데 부처님의 큰 깨달음으로 열려져 가는 길이 거기에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성태용(본지 논설위원, 건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