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욱 <취재2부 기자>
석·박사 학위 과정을 밟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은 교수라는 직함도 깨달음을 좇는 수행자에겐 버려야 할 짐인 모양이다. 2월 5일 동국대 기획인사처에 사직서를 제출한 호진(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 스님의 결단은 이 같은 생각을 들게 한다.
더욱이 2001년 교수 임용 문제로 동국대에서 적잖은 불협화음이 생기고, 결국 동국학원 이사회가 '2001년 불교학과 4개 부문의 임용을 보류한다'는 사상초유의 결정이 있었던 탓이어서 스님의 사퇴 의사는 교계 안팎의 관심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남들은 못 되어서 안달인데,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88년부터 줄곧 지켜왔던 강단을 정년까지 5년을 남긴 상태에서, 스님은 왜 홀연히 자리를 박차고 떠나려 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스님이 지인들에게 전한 평소 말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88년 동국대 강단에 설 때만 해도 빈자리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자리에 사람들이 꽉 차 있어, 후학들이 학문의 세계를 펼칠 공간이 없다."
대학 강단에 서기 위해서는 15년 이상 시간과 돈을 들여 석·박사학위를 취득해야 한다. 그 후에도 교수로 임용되는 것도 순탄치 않다. 더욱이 불교학 전공자들의 문은 동국대로 한정될 만큼 좁을 뿐 아니라 보통 교수들이 한 번 임용되면 정년까지 보통 30여 년 간을 재직하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불교학 박사들은 강사로 전전할 수밖에 없다. 즉 호진 스님은 후학들에게 삶의 길을 터주고 싶었던 것이다.
스님의 거취는 2월 28일경 동국학원 이사회에서 결정된다. 현재 스님의 지인들은 "그 결심을 장하지만, 초기불교에 대한 스님의 연구 업적을 이어받을 수 있는 후학 양성에 매진해야 하지 않겠냐"며 만류하고 있다. 그러나 후학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수행자의 길을 가겠다는 스님의 결심을 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호진 스님은 퇴직 후 경주 기림사 경내에 머물며, 수행과 집필에 몰두할 계획이다. 특히 유럽의 불교학자 라모트의 <인도불교사>를 번역하는 데 적잖은 시간을 할애할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