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집 원장 혜진스님이 함께 일했던 간사와 성관계를 갖고 고민해 왔다는 양심고백을 접하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했던 할머니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스님의 모습을 많은 불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감싸주는 일을 하는 한 가운데에 젊은 혜진스님이 있음을 우리는 든든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 스님의 행위였기에 불자들은 더욱 놀랐으며, 실망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
양심고백 이후에 들려오는 소식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후원을 끊겠다는 사람도 있으며, 위안부 역사관의 방문을 취소하는 일도 있다는 소식이다. 스님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이런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나눔의 집은 혜진스님의 집이 아니었다. 혜진스님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비판을 나눔의 집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를 만들려 노력했던 일들까지 의심할 사안은 결코 아니다. 혜진스님을 옹호하려는 말이 아니다. 나눔의 집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터로 계속 있을 것이고, 위안부 역사관 역시 아픈 역사를 교훈으로 삼는 교육장으로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돕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어야 한다. 나눔의 집 이사회에서 곧 회의를 열어 후임 원장을 임명할 예정이라고 한다. 불자들은 물론 국민의 관심사인만큼 청정하고 능력있는 분을 모셔 운영에 지장이 없도록 노력을 기울여주길 당부한다.
우리는 이번 일을 접하며, 다시 계율의 지중함을 아프게 깨닫는다. 지계는 스님들이 생명처럼 받드는 것이며, 이로 인해 불자들은 물론 세인의 귀의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범망경에서는 계율을 지키는 것을 어두운 곳에서 밝은 빛을 만난 것과 같고 병든 이가 완쾌된 것과 같다고 했다. 이번 일을 우리들을 돌이켜보는 거울로 삼지 않는다면, 어느 한 스님의 불행했던 일로 잊혀져갈 뿐이다.
여성단체에도 한 가지 당부하고 싶다. 혜진스님의 양심고백 직후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위계관계에 의한 성폭력이라고 규정하고 나섰다. 인권을 가장한 또다른 인권폭력이라는 지적에 귀기울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