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간과 공간이 열린 날, 바로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이 오심으로써 우리는 진리의 광명이 빛나는 땅에 살게 되었다. 법신불이야 오고 감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니, 본래 진리가 충만한 세계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진리에 눈어두운 중생들의 눈을 띄워주시고, 참다운 생명으로 사는 길을 실현하고 가르쳐주신 부처님. 그 은혜를 어디에 비기랴! 그 오심을 봉축하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지를 되돌아보며, 또 가르침에 따른 삶 살기를 다시금 서원하는 날, 바로 부처님 오신 날인 것이다.
우선은 우리가 참다운 삶을 살게 된 은혜에 감사드리고, 그러한 삶을 살게 된 우리를 위해 경축해야 한다. 그 기쁨이 생생하게 드러나도록 부처님 앞에 우리의 기쁜 몸짓을 마음껏 드러내는 그러한 날이어야 한다. 부처님 은혜를 함께 받은 이들, 부모 앞에 형제들이 모여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이듯, 함께 모여 그 크신 은혜를 감사드리는 축제의 마당을 열자.
그 속에 부처님의 뜻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 삶의 부끄러움까지도 담기리라. 부처님 앞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 불자들의 삶이 어찌 오늘의 모습에 머물겠는가? 또 불교계가 어찌 이렇게 갈등과 분열의 모습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 오신 날에는 그 상주하심을 잊었던 것을 참회하고, 우리 눈 앞에, 또 마음 속에 다시금 부처님을 다시 모시는 날이어야 한다. 부끄러움에 대한 참회가, 항상 부처님을 모시겠다는 커다란 서원으로 전환되어 단단히 서는 날이어야 한다.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은 모든 불자들이 이 서원에 함께 하도록 하자. 우리의 모든 행동 하나 하나를 부처님께 바치는 공양으로 삼는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하자. 우리 불교계의 모습이 부처님 눈에 어떻게 비칠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불교의 참된 모습을 세우는 것을 나의 화두로 삼는 불자들이 되기를 서원하자. 우리가 머무는 이 세상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국토이다. 그리고 그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은 우리 지금 여기 머무는 불자들의 영광되고도 무거운 사명인 것이다. 우리들의 장엄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광으로 되도록 참된 신행으로 이어지는 나날이 계속되기를 서원하자.
이(理)로 본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심으로써, 이 세상은 이미 불국토로 완성되었다. 이제 우리가 우리의 참된 신행으로써 그 세계를 장엄하는 것은 그 세계를 사(事)적으로 실현하는 일이다. 그러하기에 올바른 신행은 거듭 불국토를 완성시키는 일이요, 거듭 거듭 부처님을 오시게 하는 일이다. 부처님의 뜻에 따르는 삶 하나 하나로 이 세상에 부처님을 거듭 거듭 모시는 일인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나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허한 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하루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참된 생명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환희에, 부처님의 크신 공덕을 찬탄하는 불자들이 이 땅을 메울 때 바로 이 세계의 불국토가 완성되어 간다.
이렇게 본다면 아직 우리의 불교계는 걷어내야 할 미망이 너무도 많고, 우리 불자들의 삶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동떨어진 채 입으로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뇌이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하기에 더더욱 부처님 오신 날은 이러한 미망을 털고 참되게 부처님을 거듭 오시게 하는 서원을 다지는 날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접함으로써 하루 하루의 삶이 달라져 감을 느끼게 되면 저절로 환희심이 솟고, 부처님의 큰 은혜를 찬탄하게 되며, 불법을 접한 희유한 인연에 감사하게 된다. 아직 우리 불자들 가운데는 이렇게 삶 자체의 변화를 통해 부처님 오신 은혜를 느껴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는 찬탄을 토해내는 이들이 적은 것 같다. 올해의 부처님 오신날은 그러한 찬탄이 하루하루 이어지는 삶을 시작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하리라. 그리하여 해마다 해마다 그 찬탄이 증폭되어 온 누리가 부처님 오신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는 날로 이어지게 해야 하리라.
우리의 신행이 중생심의 무명으로 가려지는 날도 있고, 불교계가 긴 역사의 질곡을 털기에 부침이 계속되는 나날도 있다. 그러나 부처님이 실현하여 보여주신 참 생명의 이상이 있고, 그 참 생명들이 어우러져 사는 밝고 아름다운 세계의 모습이 있기에 우리는 항상 다시금 바로 설 수 있고, 불퇴전의 각오를 다지면서 새롭게 바른 길을 찾아들게 된다. 그러한 이상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허무하다는 말 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한 나날일 것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 함께 이룩해 나가야 할 밝은 세계의 이상을 주시어 우리를 그 비참함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부처님! 그 세계로 나아가는 수많은 탈 것들까지 마련해 주시지 않았는가? 근기에 맞는 탈 것을 선택하여 하루하루 향상일로(向上一路)에 있는 것으로 그 크신 은혜를 갚아 나가도록 하자. 이러한 우리들의 서원의 연화대 위에 부처님이 거듭 오시는 '부처님 오신 날'이 되기를 기원한며, 다시 한번 터져나오는 기쁨으로 부처님 오심을 찬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