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는 인류가 직면한 새로운 악(惡)’이라 한다.
그렇다. 지난주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끔찍한 테러에서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감지하고 그 사악함에 전율한다. 그 뿐인가. 테러의 성공을 보며 환희작약하는 팔레스타인들과 테러에 대한 ‘모든 수단의 응징’을 선언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미국의 표정에서 우리는 불길한 증오를 읽는다.
동서냉전이후 세계의 석학들은 21세기에는 전쟁보다 오히려 테러가 인류를 더 괴롭힐 것이라 내다보며 그 어떤 대책으로도 테러를 제압하거나 없애기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관적 예단을 내 놓은바 있다.
미국에 대 참변을 가져다준 이번 테러도 '분명한 적'을 찾아내기 쉽지 않고, 자살공격 식 수법에 대응할 방어수단도 찾기 어려워 보인다. 이처럼 비열한 테러를 어느 문명국가에서 용인할 수 있을 것인가. 마땅히 인류의 이름으로 응징돼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인류는 지금 지혜롭게 냉정을 되찾아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을 막고 테러를 부르는 ‘증오’가 과연 어디에서 왔으며 그 증오를 어떻게 해소해 나가야 할 것인가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난 일련의 테러사건들이 광신에 빠진 한 종교집단의 소행이었던 것처럼 이번 테러 역시 그들의 소행으로 의심받고 있다.
존엄성을 지녀야 할 한 인간이 어째서 자신과 세계를 파멸시킬 광신에 빠져 들 수 있는가. 누가 그들의 광신을 부추기는가.
사랑과 자비 없는 종교는 없다. 테러범들의 종교로 지목되는 이슬람교 역시 사랑과 순종의 종교며 어디에도 무자비한 폭력을 옹호하는 가르침은 없다.
그럼에도 왜 종교적 신념으로 피를 부르는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가. 종교의 탈을 쓴 정치가 종교의 순수성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적 신념 때문에 전쟁을 치른 적 없는 유일한 종교가 불교다. 앞으로 인류의 평화를 위해 불교가 맡아야 할 책무가 더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