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형진 <취재2부 기자>
국보 112호인 경북 경주시 감은사터 삼층석탑의 동탑을 둘러싼 말썽(?)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해체복원한 지 5년도 되지 않아 부실 복원으로 몸체가 내려앉더니, 이제는 또 96년 해체복원 과정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영수 전 문화체육부장관의 치적을 칭송한 수리기를 원래 수리기 대신 바꿔치기한 사실이 불거졌다.
사건이 커지자 문화재청은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통해 "예로부터 중요한 건물을 신축하거나 수리할 경우 수리기에 통치권자 치적을 포함하는 것은 관례"라며 이 과정에서 "외부압력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알려진 사실은 이와 다르다. 원래 수리기에는 복원 이유와 사리함 발굴·봉안 경위 등이 새겨져 있었을 뿐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영수 전 문화부장관의 치적내용은 없었다고 한다. 수리기를 사리함과 함께 탑 몸체 안에 넣는 봉안식을 열기로 한 전날 뚜렷한 이유 없이 원래 수리기가 다른 곳으로 실려갔고, 닷새 뒤 김 대통령 등의 치적을 새겨 넣은 새 수리기가 도착했다는 것이다.
감은사가 어떤 절인가. 삼국 통일을 이룬 문무왕이, 내가 죽은 뒤 화장해 동해에 뿌리면 용이 되어 왜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호국 전설이 서린 곳이다. 그 탑은 또 어떤가.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의 원형으로 평가되는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동탑 안에서는 우리 나라의 사리장치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사리함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은 자신의 상을 만들어 경배하는 행위를 일체 금지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 입멸 후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진 탑을 통해 그 가르침을 새겼다고 한다.
정책담당자들은 탑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알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을까. 문화재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권력에 아부하는 그런 치기 어린 발상 자체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하긴 문화와 체육을 같은 범주에 넣고(문화체육부), '문화'하면 으레 관광을 떠올리는(문화관광부) 정책담당자들에게 이런 상식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