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공통적인 충고 가운데 하나는 로마를 여행의 종착지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로마의 유적을 먼저 보고 여행을 하면 다른 곳은 그 아류이거나 이미 본 유적들에 미치지 못하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한다.
문화재는 유형의 것이 있는가 하면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것도 있다. 무형문화재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한여름 밤 로마의 유적지에서 펼쳐지는 음악회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유형 무형의 이태리 문화와 만날 수 있는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경험의 장면을 떠올리면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 가운데 하나를 깊이 생각해 본다. 몽촌 토성지역을 발굴하면서 일어난 문화재 발굴팀과 아파트를 지으려는 주민 개발팀과의 마찰이 바로 그것이다. 문화재팀은 이곳이 백제의 도읍지일 것이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발굴에 임했고 아직 정리되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성과를 얻은 것이 틀림없다. 이런 와중에 주민을 앞세운 업자들이 야밤중에 유적발굴지역을 성토하여 다시 매몰시켜 버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아무리 문화재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해서야 되겠느냐는 항변이다. 참 안타까운 팽팽한 주장의 대립이다. 문화재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담겨져 있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발굴팀과 개발팀의 당사자간 문제인 것처럼 맡겨두고 뒷짐을 지고 바라보는 정부의 처사가 민망하다. 어떤 문화재 혹은 유적도 그와 유사한 볼거리로는 재현시켜 만들 수 있어도 그 속에서 살아 숨쉬는 혼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화재는 그 형태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나온 세월만큼 혼의 나이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백제의 유적지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음악회를 한번 상상해 보라. 정부는 이제 더 이상 당사자간의 문제로 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문화재를 발굴하고 지켜주는 데 솔선해주기 바란다. 그것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엄숙한 역할이다. (이화의대 교수·본지 논설위원)